강운석(가명'56'지체장애 5급) 씨의 두 다리에는 인생의 멍이 들어 있다. 10년 전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하다 교통사고로 왼쪽다리가 부러져 철심을 박았다. 오른쪽 다리는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혈관장애로 점점 부어올라 가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 달 전부터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 공사판 일도 못 나가고 있다. 운석 씨는 몸이 만신창이가 된 자신이 원망스럽다. 언젠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드러눕게 되면 지적장애를 앓는 20대 두 딸과 아직 사춘기인 아들을 늙은 아내 혼자에게만 짐 지울까 걱정돼서다.
◆고된 부부의 삶
26일 오후 대구의 한 종합병원 1층 병실. 침대에 누운 운석 씨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담당의사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수술은 잘 됐지만 이제부터는 간이 배뇨관을 몸에 꽂아 스스로 소변을 처리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운석 씨 머릿속을 스친 것은 무사히 수술을 받았다는 기쁨도, 앞으로 배뇨관을 몸에 꽂고 생활하며 겪을 불편함도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 배뇨관 가격이 얼마나 합니까?" 400만원 병원비를 쌓아 둔 운석 씨에게는 3만원짜리 의료보조용품도 무시무시한 부담이다.
지난달 13일 운석 씨는 집에서 갑자기 혈변 증상을 보이며 발작을 일으키다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왔다. 경추(목뼈)와 흉추(등뼈)에 농양(염증)이 생긴 것. 의사는 염증이 신경을 압박해 대소변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했다. 급히 수술을 받은 운석 씨는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다.
운석 씨의 입원으로 부인 신갑숙(가명'53) 씨가 생계를 전부 떠맡았다. 이전에도 가족 생계 대부분은 갑숙 씨 몫이었다. 1주일에 3번 식당 보조 일을 해 한 달 30만원을 벌어 보탰다. 하지만 요즘은 남편 간호와 두 딸을 돌보는 일로 너무 고되다.
◆그늘 아래 세 남매
운석 씨 부부에게는 세 남매가 있다. 지적장애 1급인 딸 고운(가명'26) 씨와 지적장애 3급인 딸 기쁨(가명'21) 씨, 그리고 사춘기가 한창인 아들 용훈(가명'14) 군이다.
첫째 고운 씨는 지적장애가 심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주사기에 죽을 넣어 입속으로 넣어줘야 겨우 삼킨다. 엄마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최근 고운 씨의 다리에도 아빠처럼 이상이 왔다. 혈액이 응고돼 혈관을 막는 바람에 다리가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자칫 잘못하면 다리를 절단할 수 있다고 해 부랴부랴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막힌 혈관은 뚫었지만 재발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운석 씨는 "자식한테 몹쓸 병을 물려준 것 같다"며 가슴을 쳤다.
기쁨 씨는 언니에 비해 몸은 제대로 가누는 편이지만 대신 정서적으로 그늘이 짙다.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가끔 가출을 해 운석 씨 부부 속을 태운다. 막내 용훈 군은 한창 사춘기에 가난한 형편과 지적장애를 앓는 누나들이 못마땅하다. 갑숙 씨는 막내라도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있어야 한다며 이틀 전 한 복지단체가 개최한 캠프에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 "용훈이가 병원 입구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었어요. 캠프에 갈 차비가 없다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한테 돈 한 푼 쥐여 주지도 않고 놀다 오라고 한 겁니다." 갑숙 씨는 전기세, 수도세를 내려던 돈을 막내 손에 모두 쥐여 줬다. 오랜만에 쥐여 준 용돈이었다.
◆놓을 수 없는 가족의 끈
돈은 운석 씨 가족 모두의 생존을 옥죄었다. 한 달 전 운석 씨네 아파트 도시가스 계량기에 공급 중단을 예고하는 노란 딱지가 붙었다. 딸 고운 씨를 매일 목욕시켜야 해 운석 씨 집은 여름에도 한 달 도시가스 요금이 10만원이 넘는다. 갑숙 씨는 만용이라도 부려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도시가스 관리사무소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아픈 내 자식 목욕시켜야 하니 제발 가스는 끊지 말아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갑숙 씨는 전화를 끊은 뒤 "우리 가족 신세가 어쩜 이리도 처량한가"라며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운석 씨 부부의 더 큰 근심거리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감당할 수 없는 빚이다. 자녀들을 돌보며 이곳저곳에서 생활비를 빌려 썼더니 빚이 2천만원 넘게 쌓였다. 당장 운석 씨와 딸 고운 씨에게 들어간 병원비 500만원을 갚을 길도 막막하다.
하지만 운석 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족이니까요. 단지 지금보다는 좀 더 수월하게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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