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질문을 던져보자. "사람은 왜 남을 도울까?" 서둘러 답하려 들지 말고 찬찬히 생각해 보자. 앞서 이런 이타심의 이유가 유전 또는 관습에서 비롯된다는 주장들을 살펴봤다. 사실 이타심은 진화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아울러 자기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서로 겨루고 이겨야만 하는 인간이나 동물이 왜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돕는지에 대한 뚜렷한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야기는 이타심 호르몬에 대한 것이다.
◆감정적으로 가까우면 프로게스테론 증가
이타심을 불러일으키는 물질은 바로 여성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이며, 이 호르몬 수치가 증가하면서 이타심이 생긴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미시간대 스테파니 브라운 박사팀이 2009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프로게스테론은 여성의 월경 주기에 따라 수치가 오르내리는 호르몬이다. 여성 호르몬이지만 여성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도 비록 수치는 낮지만 갖고 있다. 여성은 폐경을 지나면서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떨어진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월경 주기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감정적 거리에 따른 호르몬 수치의 변화다. 감정적으로 가깝다고 느끼면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증가하고, 이타심도 생긴다는 것.
연구팀은 여대생 160명에게 2가지 다른 일을 시킨 뒤 호르몬 변화를 관찰했다. 먼저 생물학 관련 원고 교정을 시킨 뒤 호르몬 변화를 살폈다. 변화는 없었다. 감정 교류가 필요없는 일이었기 때문.
다음으로 컴퓨터 카드게임을 시켰다. 처음에는 호르몬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 뒤 같은 상대와 다시 카드게임을 시킨 뒤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높아진 것. 두 번째 게임이 끝난 뒤 상대가 어려운 처지에 있음을 호소하자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올라간 파트너는 "손해를 보더라도 돕겠다"는 이타심을 보여줬다.
◆옥시토신 높으면 이타심도 커져
앞선 연구에서도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다른 사람과 사귀려는 욕구가 강해진다는 것이 입증된 바 있다. 브라운 박사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높아지면 이타심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흔히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도 이타심과 관련이 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카르스텐 데 드루 교수팀이 지난해 발표한 내용이다. 옥시토신은 임산부와 아기의 유대관계를 지속시키는 호르몬으로 자궁수축과 모유 분비 등을 맡는다. 이 호르몬은 사회적 유대감과 협동심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옥시토신 호르몬과 이타심의 관계를 살펴봤다. 실험 참가자 절반에게 옥시토신을, 나머지 절반에겐 다른 것을 흡입하게 했다. 그런 뒤 각자 개인에게 주어진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묻자 옥시토신을 흡입한 남성은 자신의 돈을 자기가 갖지 않고 자기가 속한 그룹에 더 많이 투자할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 즉 이타심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호르몬만으로 이타심 커질까?
친해지면 돕고 싶은 프로게스테론이나 옥시토신 등의 호르몬이 생기고(또는 호르몬 때문에 친근감이 더해지기도 하고), 동시에 감정적으로 스트레스가 줄고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로써 이기적 유전자를 지닌 인간이 이타심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이유가 설명되기도 한다. 프로게스테론 연구를 한 브라운 교수는 "이런 이타심의 작용은 왜 사회적 친밀도가 높은 사람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살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은 병에 잘 걸리는지 설명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인위적으로 프로게스테론이나 옥시토신 호르몬을 주사하면 이타심이 커지고 사회적 행복도도 높아질까? '인위적 조작'에는 늘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프로게스테론 수치는 여성 암과 관련이 있으며, 옥시토신은 자신이 속한 그룹 내에서는 이타심을 높이지만 다른 그룹에 대해선 적대심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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