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애완견과 세금

나는 개를 좋아한다. 개 한 마리 같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뛰놀기 좋아하는 생명을 빈 아파트에 종일 가둬 두는 건 못할 일이다 싶어 십여 년을 생각만 했다.

그러다 작년에 대형견 한 마리를 만날 계기가 생겨 마당 있는 부모님께 맡겨두고 시간 날 때마다 만나러 간다. 이름은 '진구'라 지었다. 어제 헤어졌는데도 동지섣달 꽃 보듯 가로 뛰고 세로 뛰며 숨넘어갈 듯 반기는 녀석의 눈먼 사랑에 내 마음이 늘 훈훈하고, 발 달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내주는 고지식한 충성심이 기특해 길을 가다가도 절로 웃음이 난다. 나를 많이 좋아해 주고, 내가 보살펴 줘야만 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이 되는구나 싶어 자주 놀란다.

연로하신 부모님에게도 진구는 큰 기쁨을 드린다. 일흔 중반을 넘어서면서 각종 지병에 외출 횟수가 많이 줄어드신 부모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당에 나와 장난감 던지기 놀이도 하고, 간식도 챙겨주며 개하고 대화를 하신다. 떨어져 사는 자식보다 같이 사는 애완견이 낫다는 생각에 진구에게 고마울 때가 많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 동네엔 거의 모든 집이 개를 키운다. 연세 드신 분들이 주로 거주하는 주택가라 도둑 걱정이 끊일 날이 없는데 개들이 있으면 든든하고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막상 개를 키워 보니 병원비며 사료비 등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적잖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400만을 상회하며 증가 추세인 것은 국회의원들이 말하듯 경제적 여유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출산, 가정 해체 등으로 얼굴 맞댈 수 있는 가족이 줄어들고 모니터를 통한 소통이 지배적이 되어가는 사회를 살면서 따듯한 체온을 느끼고 싶은 소망,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또 주고 싶은 바람이 더 절실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애완동물 진료에 부가세를 징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선진국에서도 부가세를 매기기 때문이라고 궁색한 법안 근거를 제시하더니 동물병원 진료는 국민의 기초 후생 증진 등 공익 목적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최종적으로 내놓았다.

기초 후생이 물리적 의식주에만 국한된 것이라면 그럴듯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기초 후생이 정서적 건강의 차원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면 이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은 사람들의 삶에 기여하는 반려동물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

반려동물로 인해 우울증을 극복한 사람들, 자폐증을 개선시킨 아이들, 고독에서 벗어나는 노인들, 삶의 활력소를 얻는 수많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보이지 않는지? 혹은 알면서도 세수 확보 때문에 모른 척하는 것인지? 70억 남짓한 세금을 거두려다 그보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검토해 보지 않았는지? 국민들의 궁금증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공청회 한 번 없이 후루룩 일사천리로 통과시켜 버렸다. 맛 들려서 다른 세금들도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고안해 내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이다.

사용 목적도 뚜렷하지 않은 세금 거두는 일을 서두르기보다는 동물과 교감하며 각종 사회적 비용을 줄일 방안부터 강구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국회가 자주 인용하는 선진국에서는 반려견 기초 훈련이 필수이다. 사람과 동물이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방법을 배워야 길에다 내다버리는 사례를 방지하고 유기동물 관리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수백만 원 비용을 내야 하는 애견훈련소 대신 공원 등지에서 무료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 국고 지원을 해주는 방안이라도 강구하고 세금 운운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프랑스에서는 노숙자들이 범죄의 길로 빠지거나 자포자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가 반려동물을 지원해 주는데 성과가 제법 크다고 한다. 사회 속에서 사람과 반려동물과의 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큰 사례일 것이다.

양정혜(계명대 교수·광고홍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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