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포항불빛축제 유감

포항은 불의 도시다. 연오랑 세오녀의 일월신화에서 비롯돼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를 맞는 호미곶과 영일만이 불의 도시를 상징한다. 산업입국의 기틀을 마련한 제철소가 포항에 들어선 것도 불의 도시와 연관이 깊다.

이런 포항에서 불빛축제가 열리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 8회째를 맞은 포항국제불빛축제는 서울의 세계불꽃축제, 부산의 세계불꽃축제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빛축제로 자리 잡았다.

지난 7월 28일부터 4일 동안 북부해수욕장, 형산강체육공원에서 열린 축제에는 총 125만 명의 시민 및 국내외 관광객이 다녀갔다.

불꽃축제는 포항의 국제화 이미지 제고, 지역 경기 활성화, 시민 화합 등에 큰 기여를 했다. 올해는 5개국 8개 도시에서 대표단 및 불꽃놀이팀을 보내왔다. 축제를 앞두고 북부해수욕장 주변 상가는 인산인해를 이뤘으며 외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숙박업소도 활기를 띠었다. 지역 주요 기업들이 참여, 민'관'기업이 하나 되는 이벤트가 됐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유망 축제'에 뽑히는 경사를 맞기도 했다. 국내 대부분의 축제가 연예인들이 출연해야 흥행이 되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연예인을 초청하지도 않고 나흘간 125만 명을 모았다는 것은 축제의 성격과 규모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불꽃쇼 경비를 전액 부담하며 출연팀을 섭외해온 포스코의 노력과 포항시의 지원, 축제위원회의 빈틈없는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포항국제불빛축제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개최 시기가 행사 의미를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불빛축제의 핵심은 불꽃쇼. 불꽃쇼는 날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국제불꽃경연대회가 열린 7월 30일(토) 밤 9시 북부해수욕장. 90만 명이 숨을 죽이며 불꽃쇼가 펼쳐지길 기다렸다. 모래사장에 모두 수용하지 못한 까닭에 멀리 죽도시장 인근까지 인파가 늘어서서 수준 높은 불꽃놀이를 감상하려 했지만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다. 해무(海霧), 짙은 먹구름, 화약 연기로 인해 불꽃이 대부분 가려졌기 때문. 시민들의 입에선 '돈 아깝다'는 안타까움이 터져 나왔다. 85만 발을 터뜨리는 데 들어간 돈은 자그마치 9억 원(포스코 부담, 그 외 부대행사 등에 포항시 및 경제계 부담 8억원)이나 된다. 출연팀들은 해무 등이 걷히기를 기다리며 쏘아댔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계속 자리를 떴다. 7, 8월 북부해수욕장은 밤이면 해무가 기승을 부린다. 특히 장마철에는 더 심하다.

장마와 태풍철에는 어떤 재해가 닥칠지 모른다. 포항에서 불꽃놀이의 향연에 젖어 있을 때 서울 등 중부 지방과 강원도에선 집중호우로 이재민이 속출하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재앙이 벌어졌다. 만약 포항에 폭우가 쏟아졌다면 십수억 원을 들인 행사가 어찌 됐을지 상상하기조차 싫다.

거의 10개월 전에 잡히는 축제 일정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잔치판에는 분명 악재였다. 불꽃쇼에 출전할 해외팀을 섭외하려면 최소한 전년도 10월부터는 해외축제 벤치마킹 등 다양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들에게 불꽃을 쏴야 할 장소가 장마철 바다 위라고 하면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단다.

주최 측으로선 계획이 잡히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날짜를 기다린다. 장기 예보가 존재하지도 않지만 변덕스런 여름 바닷가 날씨를 어찌 예견할 수 있겠는가.

2004년 시작된 포항불빛축제도 3회까지는 6월 11일 '포항시민의 날' 전후로 열렸다. 그러다가 박승호 시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7월 말로 조정했다. 여름철 피서 인파가 몰릴 때 하면 홍보 효과가 더 뛰어날 것이란 기대에서다.

하지만 조정 당시 북부해수욕장 주변 상인들도 그다지 환영하지 않았다. 여름철은 손님들이 몰려드니 차라리 비수기가 더 낫다는 것. 일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포항시의 변경 의지에 밀려 버렸다.

물론 내년 이후 불꽃놀이 때 날씨가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완성도를 높이려면 시기가 중요하다. 부산과 서울도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여름을 피해 10월에 연다. 축제위원회가 이달 중순 종합평가회를 연다니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최정암 동부지역본부장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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