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역방향 달리기

'順天者 存, 逆天者 亡' 명심보감 가르침에 깨달음을 얻다

'역'(逆)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 승용차 한 대가 역방향으로 달리는 고속도로의 화면이 실시간으로 비쳐졌다. 사무실에서 무심코 화면을 보던 아들이 차가 달리는 방향 쪽으로 '볼일을 보러 가신다'는 아버지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가시는 고속도로에 역주행으로 달리는 차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야야, 나 빼곤 모두가 역주행으로 달리고 있으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KTX열차가 프랑스에서 도입될 때 수입을 맡은 공직자가 TV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선진국에서도 역방향 좌석을 즐겨 이용하고 있으며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말 같잖은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철도공사에서도 역방향 좌석의 값을 내렸다.

역린(逆鱗)은 거꾸로 붙어 있는 비늘이란 뜻이다. 임금의 진노, 상관의 노여움을 비꼬는 말이다. 원래 용이란 짐승은 잘 친하기만 하면 올라탈 수도 있지만 목 아래 붙어 있는 역린을 만졌다간 살아남기가 어렵다. 임금의 역린을 건드렸다간 "여봐라, 이놈의 목을 매달아라"는 엄명이 떨어진다.

명심보감에도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이니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보면 순존역망(順存逆亡)이란 등식이 반드시 성립되는 것 같지는 않다. 서부영화는 권선징악의 표본이지만 남의 배를 어뢰로 두 동강 내도, 저축은행의 돈을 통째로 삼켜도, 국회의원들이 제멋대로 세비를 올려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 징악은 이제 전설이다.

나도 역주행을 하다 혼이 난 적이 있다. 바다탐험 대원들과 12개의 공기통과 날 선 작살을 갖고 남해의 우도에 들어갔지만 회가 될 만한 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숙소로 빌린 우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밤하늘의 휘영청 달을 안주로 "달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베먹지 마"라는 농담을 던져가며 별빛을 탄 투명하고 순진한 소주만 죽였다.

대원들의 생선회 맛 좀 봤으면 하는 염원이 화두로 변할 때쯤 낚시로 잡은 광어를 수거해 가는 물칸 배를 만났다. 우리의 사정을 설명하고 광어 2마리를 겨우 챙길 수 있었다. 의논 끝에 칼잡이로 내가 뽑혀 역방향에 앉아 포를 뜨고 회를 쳤다. 엇썰어 놓은 광어회는 면면마다 비취 같은 빛을 발해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대원들의 젓가락이 도마 위에서 칼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나는 멀미 때문에 한 점도 먹을 수가 없었다. 분통 터질 일이었다.

가역(可逆)반응이란 것이 있다. 화학반응 때 정반응과 역반응은 동시에 일어난다. 에틸과 물이 생기는 실험에서는 정반응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고, 역반응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된다. 두 반응이 균형을 잡아주어 물질의 양이 변화하지 않는 것을 화학평형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반응은 가역반응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밸런스를 잃어버렸다. 촛불집회가 그렇고 결사항전을 외치는 화염병 시위가 그렇다. 오른쪽으로 돌 놈은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 놈은 왼쪽으로 돌아 평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고함을 크게 지르는 역반응 팀들이 실험실의 플라스크와 비커를 깰 정도로 난리를 치고 있다. 이러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아이들 체벌 문제에도 순기능과 역기능이 상존한다. 순과 역은 조장과 억제로 그것이 평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가정교육에서도 매 맞고 큰 아이들은 크게 나쁜 짓을 하지 않지만 버릇없이 큰 놈들은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역기능이 도를 넘을 때의 폐해를 짐작 못 하는 이들에게 감히 권하고 싶다. 열차를 탈 땐 역방향 좌석에도 앉아보고 나처럼 달리는 뱃전에서 거꾸로 앉아 생선회라도 한 번 쳐보면 '順天者 存, 逆天者 亡'이란 명심보감의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싫다면 고속도로에서 신나게 역주행이나 한 번 해본 후 그때 느끼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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