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이효인/개마고원

영화 속의 한국, 한국인들의 삶

인기드라마 '여로'와 '민비'를 보러 밤이면 동네 만화방으로 가던 시절이 있었다. 특별한 날이면 언니'오빠를 따라 비가 줄줄 새는 변두리 극장에서 '월하의 공동묘지'나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보기도 했다. 이제 컬러 TV는 기본이고, 취향에 맞는 영화를 골라 집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시대 변화로 극장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우려도 잠시, 영화관은 몇 차례 진화를 거쳐 지금 새로운 부흥기를 맞고 있는 중이다.

영화 소비를 둘러싼 우리의 태도가 유행을 타듯, 영화도 당연히 시대를 반영한다. 영화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당대 사회 속에서 형성된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을 담는다. 그러면 한국영화는 어떤 궤적을 걸어 지금의 자리까지 왔으며, 우리의 역사와 사회를 어떻게 투영해 왔을까?

영화평론가 이효인의 '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를 읽었다. 이효인은 한국 영화를 쾌락, 근대, 강박, 여자의 4가지 코드로 분석하였다. 시기는 해방 직후부터 1990년대까지를 망라하며, 한국 영화계 주요 감독과 영화를 대상으로 분석한다.

"1960년대 초반에 나온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빨간 마후라'를 비롯하여 1970년대 말까지 제작된 6'25전쟁에 관한 영화들은 전쟁에 관한 강박 노이로제를 승리의 스펙터클과 인간애의 표출이라는 코드를 통해 풀어갔다. 여기에서 강박 노이로제란 전쟁에 총을 들고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수동적으로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도 느끼는 죄책감 혹은 자기 연민의 감정을 말한다. 이후 1980년대부터 1990년대 까지 그 강박 노이로제는 진지한 표정으로 또 아슬아슬하게 시대적 동향을 담으면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영화들에 의해 서서히 극복의 그래프를 넘고 있었다."

지금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고지전'을 비롯해 한국전쟁은 여전히 우리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전쟁이 안겨준 강박 노이로제를 정면으로 돌파한 영화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한국 영화가 전쟁에 대해 반성적으로 접근하지 않은 것이라고 본다.

한국 영화가 여성을 다루고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김기영 감독은 애초부터 사회나 사회적 성 문제의 본질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영화들 대부분은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을 생략하고 있으며, 단지 근대화 과정의 빈부격차라든가 남성과 여성의 세력 관계나 사회문화적 세태 등을 단편적으로 담아낼 뿐이었다. 그의 영화들은 한국 남성들의 이중적인 여성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화 과정 속에서 어지럽게 벌어졌던 난장판 같은 남녀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김기영은 단순히 비참한 현실을 봉합만 한 것이 아니라, 하녀들을 실컷 욕보이다가 우리들의 세상을 욕보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김기영 감독의 대표적 영화들은 '하녀'(1960), '화녀'(1971), '충녀'(1972), '육식동물'(1984) 등이다. 특히 '하녀'는 2010년 임상수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김기영 감독의 뒤를 이어 괴이한 여자 영화를 만드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는 여성 콤플렉스, 평균적인 삶에 대한 콤플렉스, 부자 콤플렉스 등이 한편에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여자 성기에 대한 신화와 누이를 지켜야만 하는 억압으로서의 신화가 있다고 본다.

그 외에도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 강압과 저항의 시대와 강제된 성공을 향한 열망, 사회적 분열상을 보인 작가'감독'영화, 분열의 시대에 드러난 리얼리즘 콤플렉스 등 흥미진진한 글들이 이어진다.

한국 영화를 통해 우리들의 지난 삶과 현재의 삶을 바라보는 동시에 의인화한 한국 영화의 내면을 바라보려는 저자의 의도처럼, 영화를 통해 보는 우리의 근대적 삶의 풍경들이 사뭇 익숙하면서도 씁쓸하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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