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6월 KBS가 방영한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란 프로그램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KBS는 당초 3시간 정도 방영하려던 방침을 바꾸고 다른 프로그램을 중단한 채 5일간 계속했다. 5만여 명의 이산가족이 부모형제와 아들딸을 찾기 위해 여의도로 몰려왔다. 이산가족과는 무관한 사람들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란 배경 음악과 함께 전해진 애절한 사연에 눈물을 흘렸다. 전쟁통에 헤어진 이도 있었고 먹고살기 위해 생이별했던 가족도 많았다.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어느 남한의 80세 할머니가 북의 60대 아들을 위해 마련한 선물은 두툼한 겨울 양말이었다. 1'4후퇴 당시 떨어진 신에 양말조차 변변치 못한 어린 아들에게 며칠 뒤 양말을 사서 데리러 오겠다며 남겨둔 게 그대로 끝이었다. 50년을 애태운 할머니는 "양말 한 켤레만 있었더라면"이라며 목놓아 울었다.
지난 초여름 남도 통영에서 작은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 외벽 현수막에는 가족사진 한 장이 인쇄돼 있었다. "그곳에는 사람이 없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전시회. 그런데 통영의 딸이 그곳에 있습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독일 유학 중 좋은 교수직과 아픈 아내에게 최상의 진료를 보장하겠다는 북한 요원의 말을 믿고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 북으로 갔던 오길남 씨의 아내 신숙자 씨와 두 딸의 사진이었다.
오 씨의 믿음과 꿈은 헛된 것이었다. 월북 1년 후 오 씨는 독일에서 유학 중인 남한 부부를 데려오라는 지령을 받고 독일로 가던 중 탈출했다. 아내 신숙자 씨는 "범죄에 가담치 말고 도망쳐라. 그리고 석 달 안에 빼내 달라. 그렇게 안 될 경우 우리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고 잊으라"며 그에게 탈북을 강권했다. 신 씨는 통영에서 나고 자라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됐었다. 가족의 북한 탈출을 도와달라는 오 씨에게 다시 북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했다는 윤이상 작곡가도 통영 사람이다.
오 씨는 납북자는 아니다. 그러나 북의 폭력에 거주이전의 자유와 가족을 모두 잃은 피해자다. 25년 전 헤어진 아내와 두 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 피맺힌 사연이 알려지며 전국적으로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도 유엔에 신 씨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생이별을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사람의 외침에도 생이별을 강요한 북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서영관 논설주간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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