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섬유업체 미싱은 전부 우리 골목을 거치죠."
'꽃님이 시집갈 때, 부라더 미싱'이란 CM송이 1970년대 히트를 쳤다. 소 한 마리 가격이었던 미싱은 혼수품목에서 빠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워낙 고가이다 보니 시집갈 때 마음먹고 장만하지 않으면 사기가 어려웠다. 당시 대구 여성들이 혼수 장만을 위해 찾은 곳이 대신동 미싱 골목이다.
지금도 서문교회 인근 200여m 남짓한 골목에는 50여 개의 미싱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미싱 골목에는 40여 년 세월만큼의 노하우를 자랑하는 상인들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40여 년의 세월이 묻어 있는 미싱 골목
골목에 미싱 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서문시장이 원단과 포목 등 섬유제품으로 유명해지면서 자연히 미싱 가게들이 시장 주변에 생겨났다. 시장북로 쪽에 분산돼 있던 몇몇 가게들이 1970년대부터 임대료가 저렴한 지금의 골목에 모이면서 골목이 형성됐다.
골목에서 가게 문을 연 지 40년이 넘었다는 곽병문(72) 씨는 "골목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미싱 가게가 10군데 남짓이었다"며 예전을 떠올렸다. 곽 씨의 가게 '태창미싱'에는 40여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미싱들도, 간판도 모두 옛것이었다. 곽 씨는 "우리 일은 기술만 있으면 되니 이 나이까지도 일할 수 있다"며 웃었다.
하나둘씩 모여든 가게가 1980년대에는 80여 개에 이를 정도로 골목이 번창했다. 가정용 미싱도 인기였지만 여기저기 섬유공장들이 생겨나면서 공업용 미싱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한 상인은 "잘나갈 때는 한 공장에서 미싱을 몇 트럭씩 실어 날라 골목에 트럭이 줄지어 있었다"고 말했다.
◆좋은 기술로 단골 많은 미싱 가게들
미싱 골목의 가게들은 단순히 판매를 넘어 미싱 관리와 수리까지 책임진다. 이 때문에 골목 상인들은 모두 기술자들이다. 대부분 20대 초반 혹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70대의 한 상인은 "16살 때 미싱 가게에서 기술을 배웠다"며 "기술을 배우는 동안은 월급은 거의 못 받았지만 내 가게를 내겠다는 생각으로 착실히 일을 배웠다"고 말했다.
1970년대 미싱 수리비가 1만원이었는데 가게 직원의 월급이 2만원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지금은 50대에서 60대가 돼 미싱 골목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은 미싱을 다루는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단골을 만들기 위해 저렴한 판매 가격도 중요하지만 판매 이후 꾸준한 관리와 수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상인은 "친구들은 모두 정년 걱정하고 있고 벌써 회사에서 잘린 친구들도 수두룩하다"며 "우리 업은 눈만 잘 보이면 정년이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미싱 기술 배우려는 젊은이들 없어
지금도 골목에서 나가는 미싱의 80% 이상은 공업용이다. 하지만 3, 4년 전부터 가정용 미싱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고물가에 비싸진 옷값 때문에 직접 옷이나 가정용 소품을 만드는 홈패션이 유행을 타면서다. 또 기성복보다 직접 옷을 만들어 입으려는 개성파 주부들이 늘고 20, 30대 젊은 주부들은 아토피 걱정을 덜어주는 유기농 면제품으로 직접 출산용품을 만드는 게 유행이다.
30대의 젊은 사장들이 생겨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커지는 가정용 미싱 시장을 겨냥해 온라인 판매로도 발을 넓히고 있다. 30대의 골목 상인은 "가정용 미싱을 사용하는 연령대도 점점 젊어지고 있다"며 "젊은 세대들은 실용적이면서도 디자인이 예쁜 미싱을 선호하기 때문에 젊은 감각의 물건을 많이 가져다 놓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롭게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없는 것이 골목의 걱정거리다. 서로 기술을 배우려고 했던 예전과 달리 적은 월급을 받으며 미싱 가게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골목에 있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운영하던 가게를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미싱 골목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대구미싱협회 박태식 총무는 "다른 가게들에 비해 크게 경기를 타지 않고 기술만 있으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겉보기에 화려한 서비스직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단순히 판매업이 아닌 기술이 필요한 만큼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야 골목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