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때늦은 후회

'뉘우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1970년대 우리 가요계를 주름잡은 가수 문주란의 히트곡, '동숙의 노래' 끝 부분이다. 소재는 한 여인의 슬픈 사랑이지만 '때늦은 후회'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고사성어도 있다. '자식이 효도를 다하려고 해도 그때까지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의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는 글귀다. 소재는 부모님을 떠나보낸 자식의 한탄으로 역시 '때늦은 후회'에 대한 것이다. 둘 다 버스 지나가고 손을 흔드는 격이다.

정치 현장에서도 '때늦은 후회'를 많이 본다. 국민들의 마음이 떠나고 나서 후회를 하지만 때는 이미 늦다. 500만 표 이상이라는 역사상 가장 많은 표 차이로 압승을 거두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인데도 최근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보면서 민심의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는 3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수치상으로는 1년 반이 남았다. 그렇지만 국민이 느끼기에는 거의 '임기 말'이다. 이 대통령의 '때늦은 후회'를 생각해 본다. '있을 때 잘해'라는 대중가요 제목도 떠올린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초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을 때 금융감독원을 방문했다. 거기서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생존을 위한 어떤 비리가 아니라 권력을 갖고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저지른 비리는 용서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것이었지만 더 있는 사람들의 비리와 더 가진 사람들의 불법'부정에 분노하고 좌절했던 국민들을 위로할 만한 발언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나고 또다시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다. 재발 방지나 책임자 문책 등 구호만 요란했지 무엇 하나 된 것이 없다. 국민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며 냉소나 보내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반면 이 대통령은 "왜 그동안 더 다잡지 못했을까"라는 '때늦은 후회'를 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대목에서 소고기 파동과 구제역 사태가 떠오른다.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얼마 전 일어난 한전의 단전 사태 때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수위가 무척 높았다. "당신들은 잘 먹고, 잘 자고 전기 수요가 올라가니까 끊어 버리겠다고 이런 생각으로 일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내가 분통이 터지는데 실제 당한 사람들은 얼마나 속이 상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의 분노가 피부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뿐이다. 국민들은 저축은행 사태 때처럼 '저러다 말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늘 그래 왔으니까. 위에서 대통령은 이야기해도 아래서는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이후 돌아가는 품새도 영 그렇다. 여기서도 이 대통령은 '때늦은 후회'를 하지 않을까.

잊을 만하면 나오는 고위직 인사들의 인사청문회 모습도 이 대통령에게는 '때늦은 후회' 거리가 될 것이다. 거의 예외 없이 국민들은 청문회 출석자들이 걸어온 길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도 없고 나아진 점도 보지 못했다. 3년 반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을 국민들은 한다.

위장 전입과 부동산 투기가 '전공 필수'가 되고 탈세나 그 이상의 탈'불법 행위를 '전공 선택'으로 삼고 있는 것 같은 이 사회의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실망했다. 마치 그런 사람들만 뽑아 올리는 것 같은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보면서도 절망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국민들 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건지 아니면 국민들이 바라는 그런 사람이 이 대통령 주변에는 없는 건지 의문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이 대통령은 '공정사회'를 구호로 내걸었다. 그리고 올해는 '공생경제'를 이야기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이야기하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친서민 정책을 쏟아냈다.

바꿔 말하면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방증이고 우리 경제가 공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3년 반 동안 상황이 더 심각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공정과 공생.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왜 지금에 와서야 이런 '때늦은 후회'를 하는지, 국민들이 곧이들을지도 의문이다. 대통령 혼자만 걱정하고 소리치고, 아래서는 듣는 시늉만 하지는 않을지도 걱정이다.

물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는 말도 있다.

이동관(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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