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은 쇠붙이나 유리 조각 따위의 날카로운 부분을 뜻한다.
서슬에는 반드시 '퍼런'이란 말이 따라붙었다. 퍼렇게 날을 세운 서슬은 듣기만 해도 이미 뇌에는 피가 철철 흐르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한때 영화에서 서슬 퍼런 검열이 있었다. 사전에 시나리오를 검열해 붉은 줄을 쭉쭉 긋고, 그들의 잣대를 들이대고, 가위질을 해댔으니 표현의 자유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졌다.
최수종 하희라 주연의 '있잖아요 비밀이에요'(1990년)라는 영화가 있었다. '날라리 여고생'인 양혜나(하희라)가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너도 그거 하니?' '응, 나도 그거해.' '그게' 뭔지 모르는 대부분 관객은 그것을 섹스라고 해석했다. '너도 섹스하니? 응, 나도 섹스해' 여고생들이 나누는 대사로는 난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 영화의 원래 시나리오는 '너도 멘스하니?'였다고 한다. 멘스(생리)라는 말이 청소년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당시 공연윤리위원회(공륜)의 친절한 배려 때문에 '그거'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도대체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관객들은 '섹스'로 해석해버리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공륜이 청소년을 선도한다고 '멘스'라는 말도 못하게 한 것이 오히려 한국의 청소년들이 매일 섹스하는 것으로 곡해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바보들의 행진'(1975년'사진)을 만든 하길종 감독은 미국 UCLA 영화과에서 '대부'의 프란시스 F. 코폴라 감독과 함께 공부를 했다. 졸업작품 '병사의 제전'이 메이저 영화사 MGM으로부터 상을 받는 등 할리우드의 유혹도 있었고, UCLA에서 강의할 기회도 있었지만 이를 마다하고 1970년대 초 귀국했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뜻은 검열 때문에 번번이 좌절됐다.
'바보들의 행진'에서는 주인공 뒤로 여러 번에 걸쳐 쓰레기차가 지나간다. 검열의 서슬 퍼런 눈을 피하면서 '쓰레기 같은 세상'을 보여주는 감독의 눈물겨운 분투였다. 한국의 부조리를 영화에 담고 싶었던 영화 천재는 그의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1979년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최근 대중가요에 '술'이란 가사로 인해 '표현의 자유' 논란이 다시 일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벽'에 오금이 저리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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