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못살면 '혁명', 잘살면 '쇼핑'

중동의 재스민 혁명이 중국으로 넘어가서 모리화(茉莉花) 혁명이 일어나길 기대했는데 미국으로 건너가 '장미(미국의 국화) 혁명'으로 번지고 있다. 배고픈 시위가 중동과 아프리카뿐 아니라 잘사는 미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리스에 대출이 가장 많이 물린 곳이 프랑스고, 프랑스에 가장 많이 물린 곳이 미국의 월가다. 월가는 '내 코가 석 자'인데 유럽의 부실까지 떠안게 되자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맨해튼의 금융가가 젊은 실업자들의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이다. 실업이 문제면 워싱턴 백악관 앞에 가서 할 일이지 월가 금융가에서 시위는 사실 좀 웃긴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이번 미국의 시위가 끝이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번질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금년 4분기, 내년 1'2분기가 유럽과 미국경제의 '죽음의 계곡'이다. 경기는 더 나빠지고 긴축이 본격화되면 시위는 더 늘어나면 늘지 줄어들지 않는다.

못살면 '혁명'이 일어나고 잘살면 '쇼핑'이다. 미국의 경제심장부 월가가 시위대에 점령되었다는데 서울의 한복판 명동은 지금 국경절을 맞은 중국 관광객들의 쇼핑 인파에 점령되었다. 얼마 전 제주도에도 중국 관광객이 다녀가면서 제주 면세점의 70%를 싹쓸이했다고 한다. 지금 중국인의 쇼핑은 장난이 아니다. 긴 불황의 터널에서 상인들은 몰려드는 중국 손님에 희색이다.

왜 중국인들은 한국 관광에 열광할까? 미국과 유럽보다는 만만해 보이고 비행기 값이 싸서 그런 건 아닐까? 더 많은 소득이 생기면 한국이 아니라 예술의 향기 넘치는 명품의 본고장 유럽으로 가버리면 어떡하나?

부동산, 무역으로 갑자기 졸부가 된 이들이 떼로 명품가방 사러 왔다고 한국의 '한류관광 르네상스'를 부르짖기는 이르다. 명품쇼핑 외에 한국이 중국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강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중국인들의 쇼핑관광에서 한국이 오랫동안 돈 버는 방법은 무엇일까? 철새는 아무리 멀어도 자기의 집을 찾아가는 것은 향수 때문이 아니라 머리에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작은 자석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머릿속에는 어떤 자석이 들어 있는지를 봐야 한다. 중국인들의 숨기고 싶은 비밀을 읽어야 한류관광에 성공한다.

중국은 허리띠 졸라맨 30년간 정말 궁핍하게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돈가방이 넘친다. 중국인들의 명품 싹쓸이 쇼핑은 지나간 가난함에 대한 콤플렉스가 한 요인이다.

우리가 보여줄 것이 루이뷔통, 구찌 명품가방 매장이라면 그건 오래 못 간다. 중국의 상하이에는 명품매장이 아니라 세계명품이란 명품이 모두 있는 명품빌딩이 줄 서 있다. 중국인들이 명품을 못 사서 한국에 관광 오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댄스가수들이 중국인들에게 인기다. 행진곡풍의 군대 박자에 물든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의 댄스와 발랄함은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예전 노래는 심장이 먼저 듣고 요즘 노래는 몸이 먼저 알아들어야 히트한다고 한다. 그러나 길게 가려면 몸이 아니라 마음이 듣는 노래여야 한다. 중국이 한국 음악 좋아하는 것은 내림(?)이다. 중국의 애국가라고 볼 수 있는 인민해방군행진곡의 작곡자는 한국인이다. 정률성이라는 광주 출신의 작곡가이다. 옛날부터 우리는 중국인의 마음을 읽는 실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중국인의 마음속에는 여러 종류의 친구가 있다. 같이 술 마시고 노는 친구(酒肉朋友), 같이 공부하는 친구(校友), 지심(知心) 친구, 지음(知音) 친구 등등. 이 친구 중 최말단이 술과 고기 같이 먹고 몸을 즐겁게 하는 친구다. 지식을 공유해 뇌를 즐겁게 하는 친구가 다음이다. 그러나 최고 수준의 친구는 마음을 읽는 친구다. 그 친구가 연주하는 악기의 음만 들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친구가 최고의 친구다. 이런 친구에게는 돈이 아니라 목숨을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게 중국인들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골프장에 같이 갈 수 있는 친구 4명이 최고의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이러면 중국인들과의 비즈니스에서는 진다. 한국이 중국인들의 한류관광에서 오래 호황을 누리려면 중국인의 마음을 읽는 진짜 친구가 많아야 하고 한국 갔다 왔다고 자랑할 만한 문화가 있어야 한다. 남 따라 하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최고의 마케팅은 CCTV의 황금시간대 광고가 아니라 입소문이기 때문이다.

전병서(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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