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원(가명'47) 씨의 뇌신경에는 6㎝짜리 종양이 자라고 있다. '신경초종'이라고 불리는 이 종양 때문에 윤 씨는 밥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똑바로 걷는 것조차 힘들다. 하지만 종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윤 씨 앞에 쌓여 있는 수천만원의 빚이다. 믿었던 친구에게 10년 전 연대 보증을 선 탓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상대를 미워하지 않았다. "미워해서 뭐합니까. 어차피 몸까지 이렇게 됐는데 용서하고 살아야죠."
◆물도 못 마셔
"콜록 콜록."
4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입원실. 윤 씨의 기침이 시작됐다. 기침을 한 뒤 윤 씨는 휴지에 침과 가래를 뱉어냈다. 5분마다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는 뇌종양 제거술을 받은 뒤 물은커녕 침도 목구멍으로 삼킬 수 없다. 종양이 뇌신경에 생겨 식도와 오른쪽 팔다리 등 신체 일부를 마비시켜 버려서다. 침과 가래를 잘못 삼키다가 기도로 넘어가면 폐렴으로 이어져 생명이 위독해진다. 지난여름 생의 큰 고비를 넘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난 5월 26일 최 씨는 16시간에 걸친 뇌종양 제거술을 받았다. 의식을 되찾은 그는 죽을 먹었다. "여보, 죽이 와 이리 잘 넘어가노." 하지만 밥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의 건강은 악화됐다. 최 씨를 살펴본 의사는 "수술 뒤 식도 신경이 죽어서 음식이 기도를 통해 폐로 넘어갔다"며 "하루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씨는 다시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위에 작은 관을 연결해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다.
그가 뇌종양의 존재를 처음 안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꺾여 넘어지기 일쑤였다. 병원비가 아까워 병원 방문을 미루다가 결국 큰 병을 얻었다. 대학병원에서 "머리에 6㎝짜리 종양이 자란다"는 진단을 받았다. 막노동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윤 씨는 진단을 받고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 가난이 그를 미련하게 만들었다.
◆하루살이 인생
윤 씨가 처음부터 불안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15년 전에는 철물 공장에서 기계 만지는 일을 하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가 부도나면서 직장을 잃었고 그때부터 하루 벌이를 찾아야만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만두공장에서 만두를 포장하고, 택시 운전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랬던 그의 발걸음이 어느 순간 경산역 앞 인력 사무소로 향했다. 공사장에서 용접일을 하면 하루에 10만원, 건물 청소를 하면 6만원을 벌었다. 교회에 가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새벽 인력 사무소 주변을 맴돌았다.
아내 김미자(가명'47) 씨도 생계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남편은 막노동을 하고 아내는 식당 설거지, 틈틈이 가사 도우미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김 씨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두 아들을 집에 두고 돈 때문에 다른 애들을 챙기는 일이었다. 지금은 어엿한 성인이 된 자식들이지만 당시에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였다. "우리 애들은 집에서 엄마 기다리고 있는데, 남의 집 아들 학원가기 전에 밥 챙겨줘야 할 때, 그때 가슴이 참 먹먹했죠." 이렇게 힘들게 살았는데 남편이 큰 병을 얻었다.
◆"미워해서 뭐하나요"
이들 가정에는 앞서 더 큰 시련이 있었다. 윤 씨 부부는 1998년 외환위기 전 남편 친구가 운영하는 광고회사에서 함께 일했다. 달력과 부채, 각종 광고물을 제작하는 회사였다. 남편 친구는 "사업 확장을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한다"며 윤 씨에게 연대 보증을 부탁했다. "회사에 직원이 12명이나 되고, 친한 친구니까 그냥 믿고 서줬죠.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부부는 함께 연대 보증서에 사인을 했다. 하지만 믿었던 친구는 5년 전 수천만원의 빚을 남기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주변인들은 "짐을 싸서 온 가족이 미국으로 도망갔다"며 혀를 찼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윤 씨 부부에게 연락 한 번 없는 상태다. 그 빚은 고스란히 윤 씨 앞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매달 채권추심업체에서 보낸 빚 독촉장이 부부의 가슴을 짓누른다.
하지만 윤 씨는 그 친구를 용서하기로 했다. "원망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차라리 친구가 잘돼서 한국으로 돌아오길 믿어야죠." 하지만 세상은 착하게 사는 사람들의 편이 아니었다. 윤 씨는 친구를 용서했지만 그는 질병과 보증으로 삶의 기반을 잃었다. 전세 보증금 2천500만원을 생활비 때문에 빼서 쓰고, 지금은 교회에서 마련해준 50㎡(15평 정도)짜리 집에서 무료로 살고 있다. 지금 수입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생계급여 75만원이 전부다. 장남 철민(가명'22) 씨는 대학교 3학년이고 둘째 철기(가명'21) 씨는 군 복무 중이어서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지 못한다. 윤 씨 앞에 쌓인 병원비는 1천100만원. 막막한 현실 앞에서 윤 씨는 세상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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