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행복지수

중국과 인도 사이, 히말라야 동쪽 끝에 자리한 조그만 산악 국가 부탄에서 동화 같은 왕족 결혼식이 열렸다. 해외 유학파인 31세의 청년 국왕과 열 살 아래의 평민 여성의 결혼식에 세계인들의 이목이 쏠리면서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도 새삼 높아졌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한반도의 5분의 1 정도 크기에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 2,000m 이상의 산악 지대로 인구가 70만 명가량이며, 1인당 GDP가 2천 달러 미만인 이 나라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것이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느리고 더딘 삶에 있었다. 천혜의 순수한 자연과 함께 그들 나름의 여유 있는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온 것이다.

부탄 남자와 결혼해서 그곳에서 20년을 살아온 미국 출신 여성 린다 리밍은 최근 자신이 쓴 책 '부탄과 결혼하다'에서 '부탄은 마법과도 같은, 잠들어 있는 듯 고요한 작은 나라'라고 소개한다. 그녀는 '부탄에서 시간이란 일직선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탄 사람들은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도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환생을 믿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쓴 유명한 책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를 떠올린다. 1970년대 언어 연구를 위해 인도 북부 지역의 작은 마을 라다크에 들어갔던 저자가 쓴 지속 가능한 발전과 평등한 삶의 방식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오래된 미래'는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생태적 지혜를 통해 오랜 세월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온 라다크가 서구식 개발 속에서 환경이 파괴되고 사회가 분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부탄과 결혼한 린다 리밍도 이를 주목한다.

헬레나 호지가 라다크를 처음 찾았을 때 그곳 사람들도 부탄처럼 그들의 삶의 방식대로 천천히 느리게 잘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출간한 1990년대 이후 많은 사람들이 라다크를 찾게 되었고 문명의 혜택에 길들여지게 된 것이다.

라다크처럼 저생산 체계의 구축과 느림의 철학으로 행복한 삶을 이어온 부탄 또한 자본의 논리와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짜릿한 유혹에 빠질까 염려된다. 자본주의적인 삶과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가난한 부탄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행복할까.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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