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가명'32'여) 씨에게 생후 5개월 된 딸 미향이의 탄생은 기쁨인 동시에 슬픔이었다. 아이는 날 때부터 장(腸)이 배 밖으로 나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벌써 세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죽음의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북한을 뛰쳐나온 박 씨지만 자식의 병 앞에서 한없이 약해졌다.
◆아픈 딸, 굶주림보다 절망
25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5층 소아청소년 병동. 3.3㎏ 나가는 미향이(1)의 작은 몸집에는 고무 호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아이는 엄마 젖 대신 입에 연결된 호스로 끼니마다 설탕물을 먹으며 버틴다. 배 밖으로 튀어나온 소장을 배 안으로 집어넣고, 장이 막힌 부위를 잘라내고, 다시 연결하기 위해 벌써 세 번이나 큰 수술을 받았다. 미향이는 이 병 때문에 6월 태어난 순간부터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의 병명은 몸 안의 장기가 밖으로 나와 있는 '복벽 열림증'으로 이 병을 앓는 신생아는 희귀하다.
미향이 주치의인 황진복 교수는 "미향이는 감염 우려 때문에 우유도 못 마시고 설탕물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미향이의 소장 길이는 60㎝ 정도로 정상 아기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앞으로 특수영양주사를 놓아서 장 길이를 길게 하는 치료도 함께해야 한다"고 걱정했다.
엄마 박 씨는 이런 딸 곁을 24시간 지키고 있다. 그에게 딸의 아픔은 북한에서 당했던 고문만큼이나 끔찍하다. 박 씨는 2000년 고향 평안남도 성천군에 식구들을 남겨두고 중국으로 도망쳤다. 목숨을 건 '도주'였다. 박 씨는 그해 12월 깜깜한 밤, 두만강이 꽁꽁 얼기만을 기다렸다가 중국을 향해 달렸다. 뒤에서 총성이 울렸지만 그는 앞만 보고 달려갔다."북한에서 굶어 죽으나, 총에 맞아 죽으나 죽는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중국 길림성에서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에 취업한 그는 신분을 숨기고 열심히 일했다. 2년 넘게 일하면서 한화로 100만원 정도를 모았다. 하지만 한곳에서 오랫동안 일한 것이 화근이었다. 2007년 북한 보위부(국가안전보위부) 사람들에게 정체가 발각됐고 북한으로 끌려갔다.
◆한국에도 희망은 없다
강제 북송된 그는 함경북도 온송의 보위부에서 20일간 조사를 받았다. 보위부 관계자들은 '조국 배반자'인 박 씨 머리를 나무 막대기로 수차례 때렸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깨어나길 기다렸다가 다시 때렸다. 그들은 다른 탈북자들이 항문에 숨겨둔 돈을 꺼낼 만큼 독한 사람들이었다. 조사가 끝난 뒤 박 씨는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 나라를 배신한 탈북자들이 모여 강제 노역을 하는 그곳에서 박 씨는 '늑막염' 진단을 받았다. 병에 걸린 이들은 가차없이 밖으로 내쳐졌고 박 씨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재회했다. 7년 만에 만난 어머니는 폭삭 늙어 있었고, 박 씨는 산 송장처럼 시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건강이 악화된 딸을 위해 죽으면 묻을 장소까지 준비해뒀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박 씨의 건강은 1년 만에 깜짝 놀랄 만큼 회복됐고 그는 또다시 탈북을 꿈꿨다. 경찰에 다시 붙잡히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독약을 손에 쥔 채 두만강을 건넜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중국 칭다오에 도착해 숨어지내다가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2009년 12월 마침내 한국땅을 밟았다. 박 씨가 지금 남편인 장민식(가명'39) 씨를 만난 것은 지난해 5월경이었다. 남편은 박 씨보다 6년 일찍 탈북에 성공했고 당시 한국에 정착한 상태였다. 박 씨는 가진 것이 없어도 새터민끼리 만나면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고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박 씨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남한에서 태어난 자식은 최소한 굶어 죽을 걱정 없이 자랄 수 있으니, 그것마저도 박 씨에겐 행복이었다. 하지만 올해 6월 8일, 재왕절개 수술을 해 세상 빛을 본 딸은 건강하지 않았다. 딸 아이의 배에 장이 길다랗게 튀어나와 있었기 때문. 그때부터 박 씨 부부는 새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병으로 힘들어하는 딸을 보면서도 아픔을 덜어줄 수 없는 부모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렸다. 부부는 엄청나게 불어난 병원비가 감당이 안 된다. 컴퓨터 수리일을 하는 남편 월급 140만원으로 생활비와 사채 이자를 갚기에도 벅차다. 정부의 의료비 지원을 받았지만 다섯 달 동안 불어난 병원 입원비와 수술비가 1천만원에 달한다. 게다가 미향이가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으려면 앞으로 더 많은 돈이 들어 박 씨 부부의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다."우리가 어떻게 한국에 왔는데, 내 자식은 한국에서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살았으면 했는데." 이런 절망 속에서도 박 씨는 견뎌 내야만 한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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