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결백 프로젝트

지난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권투 경기에서 52세의 듀이 보젤라가 데뷔전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라이트헤비급 논타이틀 4회전으로 비중이 작은 경기였지만 그가 살인 누명을 쓰고 26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2년 전 출소, 평생소원이던 프로 복서가 된 그는 이 경기에서 자신보다 22살이나 적은 상대 선수에게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보젤라의 비극은 1977년 뉴욕에서 일어난 92세 노파 피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시작됐다. 사건 현장에서 다른 사람의 지문이 나왔지만 2명의 목격자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법원에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열여덟 살의 재능 많은 프로 복서 지망생이던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삶이 파괴됐다. 잘못된 기소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변호해 주는 '결백 프로젝트'를 통해 전과자인 당시의 목격자들이 그를 범인으로 증언하는 대가로 경찰이 다른 범죄를 눈감아 준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마침내 석방됐다.

1992년 시작된 '결백 프로젝트'는 비영리 공익 기구로 과거에는 없었던 DNA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지금까지 300명 가까운 이들의 누명을 벗겨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동생이 오빠의 살인 누명을 벗기기 위해 18년 동안 애쓰다 '결백 프로젝트'를 통해 무죄를 입증해 낸 실화가 영화 '컨빅션'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결백 프로젝트'는 그 성과가 알려지면서 전 세계 50여 개 도시로 확산되는 추세다.

27일 초등학생 성폭행 살인 혐의를 받고 15년간 옥살이를 했던 정원섭 씨가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1972년 사건이 일어난 지 39년 만에 누명을 벗은 그의 나이는 벌써 77세다.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된 뒤 재심을 받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벌였고 결국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권고로 재심이 이뤄져 3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우리나라에도 그간 간첩 누명을 쓴 납북 어부, 범죄자로 몰려 수감 생활을 했던 평범한 시민 등 누명 쓴 이들의 기구한 사연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를 접할 때마다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 소중하게 와 닿는다. 누명 쓴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제도 개선을 검토해 봐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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