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지음식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을 상징하는 만큼 정성들여 만들어야죠."
추석 이후 본격적인 결혼 시즌이 되면서 새벽 2~3시부터 불이 켜져 있는 골목이 있다. 이바지 음식 가게가 모여 있는 '덕산 떡전골목'이다. 역사가 300년이 넘는 염매시장의 대표 골목으로 떡전골목의 역사만도 50년이 훌쩍 넘는다.
동아쇼핑, 현대백화점이 떡전골목 자리에 들어서면서 규모가 예전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결혼준비를 위해서는 이곳 떡전골목을 찾는다. 이곳 상인들은 골목을 찾는 손님들의 새로운 인생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정성스럽게 이바지음식을 만들고 있다.
◆피란민들이 떡을 팔던 골목
떡전골목의 시작은 6'25전쟁 직후다. 당시 대구에서 손꼽히는 시장이었던 염매시장에서는 피란을 갔다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떡을 하나 둘 팔기 시작했다. 1960년대 들어서는 현재 동아쇼핑 서편에 좌판을 깔고 노점 형식으로 떡전이 상설화되면서 지금의 골목 모습을 갖췄다. 떡집이 인기를 끌자 현대백화점 동편까지 떡전이 확장됐다.
떡전골목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40년 정도 전부터다. 지금의 동아쇼핑과 현대백화점 사이 길가에 노점이 아닌 번듯한 20여 개의 가게가 들어서면서 대구사람들 사이에서 이곳이 떡전골목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염매시장 주변 상권은 예전부터 고급 요릿집과 요정이 많았는데 떡집들도 이곳에 물건을 공급하며 자연스레 고급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주로 혼수떡, 폐백떡이 주를 이뤘다. 1970년대 중반 '미영혼수'라는 가게에서 떡에다 이바지음식까지 함께 팔기 시작했고 주변에 한복점이 많아 '혼수골목'으로 불리면서 주변 떡집들도 하나 둘 이바지음식을 취급했다.
◆이바지를 보면 그 집안을 알 수 있다
이바지는 잔치를 뜻하는 '이바디'에서 유래된 말로 지금은 정성 들여 만든 음식과 그 음식을 보내는 일을 말한다. 지역마다 이바지 풍습이 다르지만 경상도는 주로 혼례 전날과 당일 날 양가에서 서로 음식을 주고받는 것이 전통이다.
예전에는 이바지 음식을 직접 집에서 만들어 사돈댁에 보냈지만, 지금은 이바지음식을 하는 떡전골목 같은 곳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이라는 중요한 행사에 사돈댁에 전하는 음식인 만큼 직접 집에서 만들 때부터 음식의 맛은 물론 모양도 신경을 써서 보냈다. 그래서 떡전골목에 들어서면 가게마다 진열된 화려한 이바지음식 모형들이 눈에 띈다. 떡도 색색별로 예쁘게 담고, 전 종류도 격식 있고 고급스럽게 담아 진열해뒀다. 상인들은 "이바지 음식은 단순히 맛뿐만 아니라 받은 집에서 음식을 열어보자마자 감탄을 자아내는 모양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보내는 음식군은 전 종류, 떡, 고기, 건어물 등으로 크게 변화가 없지만 화려하고 예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세부 음식 종류는 많아졌다. 특히 떡은 예전에 인절미, 송편 등 단순한 떡에서 지금은 한방떡, 영양떡 등 상인들이 다양한 종류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직접 하는 음식만큼 정성을 담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한 상인은 "이바지음식은 단순히 음식이라기보다는 결혼하는 상대편 집안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 중 하나"라며 "친척들이 모여 사돈집에서 보내온 이바지음식을 먹을 때 맛이 없거나 모양이 못났으면 상대편 집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말했다.
◆더 맛있고 보기 좋은 이바지음식으로 손님맞이하는 떡전골목
동아쇼핑과 현대백화점이 들어서면서 떡전골목은 자리를 옮겨갔다. 1980년대에는 동아쇼핑이 들어서면서 동아쇼핑 서편상가들이 동편으로 옮겨가고, 3년 전에는 현대백화점 쪽 상가들이 종로 쪽으로 옮겨갔다. 1980년대에 옮겨간 상가들은 어느 정도 정착이 됐지만 종로 쪽 상가들은 최근 위기를 겪고 있다. 종로 쪽 한 상인은 "대로변 바로 입구에 가게가 있다가 안쪽으로 들어와 버리니 예전의 반 정도로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15개의 떡집이 남아 이바지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혼수자체가 간소화되면서 이바지 음식을 간단하게 하려는 손님이 많아졌다.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에서 이바지 음식을 주문하기도 해서 떡전골목을 찾는 손님들은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상인들은 손님들에게 정성스럽고 보기에 좋은 이바지음식을 전하면 그 손님이 단골이 되고 다시 단골손님의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떡전골목 상인들이 함께 새로운 떡 기술을 배우기 위해 교육에 참여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한식 요리를 배우러 다니는 상인들도 있다. 상인들은 "이바지 음식은 모양과 맛이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모양만 보고 사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며 "정성스럽게 만든 이바지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고르시고 떡전골목도 많이 찾아달라"고 전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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