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 나름 바쁜 일상이었지만 평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서울의 전시장을 찾았다. 주로 지인의 개인전 오프닝 행사 참석이 많았고, 행사 뒤엔 늘 아쉬움을 느끼며 대구행 열차를 타기 바빴다. 전시 오프닝과 간단한 다과가 끝나면 지인들과 함께 미리 예약해 둔 갤러리 인근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뒤풀이를 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준비한 작가들에 대한 칭찬이 여기저기 자자하다. 시간이 흐르고, 술잔을 기울인 채 각자의 작품세계, 인생이야기, 사랑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들릴 때쯤 나는 일어나야만 했다. 그래도 늘 서울발 대구행 막차를 선택했고, 매번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오곤 했다.
3년 전 늦은 가을, 다섯 번째 개인전을 봉산동의 모 갤러리에서 한 적이 있다. 당시 제2회 대구사진비엔날레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었고, 대구는 사진 축제의 장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봉산동도 그러했다. 덕분에 더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찾았고, 더 적극적인 홍보가 되어 작가에겐 일석이조가 되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전시 전날 오프닝 행사 뒤풀이 장소를 미리 예약해뒀다.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거리 인근의 한 식당이었다. 이곳은 몇 해 전부터 많은 원로 예술가들이 찾던 곳이고, 개인적으로는 집안의 친척이자 2년 전 세상을 떠난 원로화가의 단골식당이기도 했다.
한 작가가 개인전을 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따른다. 비용도 의외로 많이 든다. 작품제작비 외에도 자질구레하게 들어가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보통 초대전의 형식으로 전시가 진행되면 오프닝 음식 및 다과까지는 갤러리 측에서 준비해준다. 다만 그 이후의 뒤풀이는 작가가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날 개인전 뒤풀이는 특별했다. 많은 사람들의 따뜻함이 담겨 있어 아직까지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훈훈해진다. 관람객을 맞이하느라 좀 늦은 시간에 뒤풀이가 열리고 있는 식당을 찾았다. 이미 식당은 개인전을 보고 온 사람, 바로 식당으로 온 사람 등 지인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 뒤풀이가 파할 때쯤 자리에 있던 K작가가 자기가 쓰고 있던 모자를 건네주었다. 무심코 받아든 그 모자 안에는 1만원권 지폐가 가득했다. 얼핏 봐도 뒤풀이에 참석한 인원과 지폐의 수가 같은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식당 아주머니께서도 봉투 한 장을 건네주었다. 축하한다는 격려금이었다.
그날, 식당 전체를 가득 메운 지인들을 맘껏 대접했다. 그러고도 돈은 조금 남았으니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예술가들의 정감 있는 세계가 아닐까? 그리고, 그날의 여운은 3년이 지난 아직까지 늦은 가을 오후 단풍사진을 찍듯 선명하게 가슴속에 남아 있다.
송호진 <대구대 영상애니메이션디자인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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