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윤중리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에서의 공부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검정하는 시험이다. 이름이 너무 길다 보니 줄여서 흔히 수능이라고 부른다.
수능은 학력고사가 지식 중심의 시험이었다는 반성과 함께 그 단점을 보완하고,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추리, 상상력과 창의력을 중심으로 평가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방법이다. 내신성적, 입학사정관제, 면접, 논술 등의 방법들이 어우러져서 어느 정도 정착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다. 고3이 되면 모든 생활은 오직 수능을 위해서 바쳐진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본인뿐이 아니다. 집안에 고3이 있으면 온 가족이 고3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이의 영양을 책임지는 어머니는 물론, 버스가 끊어진 이후에 아이를 태우러 학교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다. 학교와 가정,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 모두가 수능의 노예가 된다.
수능은 고등학교에서 정상적으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갖추게 된 대학수학능력을 알아보는 시험이니까 학교에서는 그냥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를 못하고, 어떻게 하면 수능에서 좀 더 나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에 골몰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소위 수능형 수업이란 게 생겨난다. 교과서는 사 놓았으나 표지도 넘겨보지 않고, 입학만 하면 줄곧 3년을 문제집 풀이에 매달리는 것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내가 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고전문학을 수업하다 보면 자연히 고전문학 작품이나 경전의 문구들이 인용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칠판에다 한문을 몇 자 적었더니 한 아이가 "선생님, 한문은 수능에 안 나옵니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이걸 이해하려면 원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한 수 더 뜬다. "선생님 수업은 수능 스타일이 아닌데요." 그러면 넌 다음시간부터 내 수업에 들어오지 마라 했더니 정말로 그 다음시간에 수업에 안 들어왔다. 기가 막혔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아이들 가르치며 살아왔고, 그것이 보람이요 기쁨이라고 생각해 왔던 지난날이 갑자기 허망해졌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싹 가시는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수능의 시대에 수능 스타일의 수업을 못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생각되었다. 그렇다. 교육의 본질은 애정에 있다. 애정이 없으면 교육이 아니다. 떠나자. 일자리 못 구해서 난리인 젊은 사람들에게 내 앉은 자리 하나라도 내어주자. 그것도 봉사다. 그렇게 해서 나는 별로 명예롭지 못한 '명예퇴임'을 했다.
다시 수능의 계절이 왔다. 모든 과정이 원만하게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 온 모든 수험생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소설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