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짓는 사람은 아마 병법을 알 것이다. 비유하자면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다. 제목이란 적국이요, 고사(故事) 인용이란 전장에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글자를 묶어 구(句)를 만들고 구를 모아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어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이다. 앞뒤의 조응(照應)이란 봉화를 올리는 것이요, 비유란 기병(騎兵)이 기습 공격하는 것이다. 억양반복(抑揚反復)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題)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다.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을 남기는 것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 에서 과거 시험용 글쓰기를 전쟁에 비유했다. 핵심은 용병(用兵)의 방법이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과 상황, 그리고 정보에 따라 임기응변해야 하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본 것이다. 옛 법을 따르되 당대의 문제를 나타내는 데 알맞도록 변화시켜 훌륭한 문장을 이룩하는 것이 '합변'(合變)이라고 하고, 그것은 글자와 뜻을 비롯한 글쓰기의 여러 제재를 적절히 사용하는 데 있다고 했다. 시대는 언제나 새로운 시대정신에 따라 움직이며 글쓰기의 내용이나 방법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논술은 단지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박지원의 표현으로 이해하면 전쟁의 조건이나 방법이다. 논술이라는 방법을 통해 주입식 교육 대신 자신의 삶과 대화하고 세상과 소통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은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므로 대학입시에서 논술 비중이 확대되든 감소되든, 논술이라는 전쟁의 조건이나 방법이 지닌 교육적인 의미에는 변화가 없는 셈이다.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 삼각형은 하나의 각이 커지면 나머지 두 각의 크기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의 틀이 있고, 그 틀 속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지금까지 논술고사의 방향도 대체로 그랬다. 삼각형이라는 틀 속을 맴돌면서 서론, 본론, 결론 쓰기를 가르치거나 전제와 결론을 배웠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틀은 온전하게 달라진 시대를 담기에는 무척이나 버거웠다. 박지원의 말을 빌린다면 '합변'의 방향을 정립하지 못한 셈이다. 그러면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존재한다. 삼각형만 도형이 아니다. 이제 내각의 합이 360도인 사각형을 꿈꾸어야 한다.
다른 시대는 다른 정신을 요구한다. 그것을 우리는 시대정신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에게 현재를 가르치고 미래를 꿈꾸는 방법을 제시하는 우리가 이러한 시대정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인재를 키우기는 어렵다. 시대는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따라서 논술교육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현재 대입논술고사가 지닌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삼각형을 사각형으로 바꿔볼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박지원이 '소단적치인'에서 주장한 '합변'이 아닐까 싶다.
한준희 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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