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대구FC "미안하다, 사랑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나이를 이기지 못함일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낙엽도 달리 보인다. 얼마 전 집에서 가까운 대구스타디움 주변을 거닐다 대구시민프로축구단 대구FC의 주주동산을 마주했다. 수변관을 따라 세워진 20여 개 조형물에는 2003년 국내 프로축구 무대에 뛰어든 대구FC의 창단에 참여한 4만 5천여 명의 주주 명단이 담겨 있다. 대구FC는 주주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04년 4월 주주동산을 조성했다.

오랜만에 이곳을 찾아서일까. 옛 기억이 가슴을 짓눌렀다. 기자는 대구FC 창단을 전후해 3년간 축구 담당을 했다. 대구 토박이인데다 축구를 좋아했고, 미국과 한'일 월드컵을 비롯한 A매치와 국내 프로축구대회를 취재한 축구 관계자로 당연히 주주가 되어 있어야 했지만 조형물에는 나의 이름이 없다. 이 때문에 주주와 관련한 기사를 쓸 때나 주주동산 옆을 지나칠 때면 뭔가 잘못한 것 같은 부끄러움에 시달렸다.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대구FC가 어느덧 내년이면 출범 10년을 맞는다. 되돌아보면 대구FC 창단에 앞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면서 국내의 축구 열기는 대단했다. 당시 대구시와 대구상공회의소로 대변되는 지역 경제인들은 프로축구단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겼다. 한'일 월드컵의 광적인 열기에 도취된 대구시와 상공회의소는 시민축구단 창단을 주도했고, 많은 지역 기업과 시민들이 주주로 참여한 것이다.

하지만 기자는 대구FC 창단에 부정적이었다. 한'일 월드컵의 표면적인 열기가 '거품'이란 걸 감지했기 때문이다. 경기장을 찾고 거리로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월드컵 열기에 동참하려는 애국심 높은 군중이었다. 진정한 축구팬이 아니었다. 이를 입증하듯 우리나라에선 한'일 월드컵 이전부터 지금까지 A매치 경기장은 관중으로 가득 차지만 프로축구 경기장은 텅텅 비어 있다.

대구FC 창단의 주역인 대구시와 대구상공회의소는 이런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대구FC 창단은 면밀한 검토 없이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주식을 공모할 때 기자는 10여 일간 해외 출장 중이었다. 귀국 후 매일신문사에서도 시민 주주 공모 행사가 열렸음을 알게 됐지만 개인적으로 주주가 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주주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외면, 지금까지 부끄러워하고 있다.

창단 9년이 지난 지금 대구FC의 모습은 어떠한가. 두 차례 꼴찌의 쓴맛을 보는 등 매년 하위권을 맴도는 대구FC의 모습은 비참함 그 자체다. 시민구단이란 말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된 지 오래다. 초창기 반짝 주목받았으나 성적 부진 등으로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급기야 올 들어 관중 동원 대책으로 지난달 9일 광주FC와의 경기에서는 승용차 11대를 거는 로또식 이벤트가 마련되기도 했다. 앞서 구단은 무료 입장이나 다름없는 '구민의 날' 행사 등을 마련했지만 관중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시민축구단의 주인인 대구시 관계자들은 대구FC 얘기만 나오면 자리를 피하려는 기색을 보인다. 대책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직'간접적으로 수십억 원의 운영 경비를 마련해 줘야 하는 대구시의 입장에서 대구FC는 애물단지다. 지원을 외면할 수도, 그렇다고 기업구단처럼 예산을 들여 아낌없이 지원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시민축구단 창단의 또 다른 주역인 대구상공회의소는 회장이 겸직하던 대구FC 대표이사직을 내놓고 일찌감치 발을 뺀 상태다. 대구FC의 초대 대표이사는 당시 노희찬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이다.

이제 대구FC의 운명은 내년 시즌 후 어떤 식으로든 결정된다. 2003년부터 시행되는 승강제에 따라 성적이 나쁘면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것이다. 성적이 나빠 도시 이미지를 흐린다면 축구단은 존재 가치를 잃게 된다.

위기 상황을 반영하듯 대구FC는 올 시즌이 끝나자마자 외국인 감독을 영입, 사실상 도박과 다름없는 모험에 나섰다. 올 2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재하 대표이사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대구FC의 자리 잡기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쳐 보겠다"고 했다. 대구시와 대구상공회의소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기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대구 스포츠의 연인이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대구FC라고 말하고 싶다. 야구장에서 '최강 삼성'을 외치는 시민들이 축구장을 찾아 '최강 대구'를 부르짖는 매력을 느끼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대구FC에겐 지금 대구시민들의 사랑이 필요하다.

김교성/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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