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귀

 귀를 잘라,

 스스로 못질을 하고 관뚜껑을 닫아버린 귀는

 소리가 태어나 죽는 찰나의, 생애를 음각하던 귓바퀴 흔적만 남은 슬픈 귀는

 이 세상 먼저 하직한 것들이 돌아와 달팽이관 같은 방마다 알전구 켜지는 소리 듣는, 비로소 적막에 든 귀는

 죽을 만큼 쓰리고 아파도 엉엉 소리 내어 울어본 적 없는 귀는

 추방된 이교도처럼 일찍이 세상의 모든 소리와 불화의 성전을 차리려 했던 귀는

 (………)

 누가 무덤 밖에서 비문 없는 비문을 탁본하는지, 붉은 지느러미가 돋는 귀는

강해림

 

청각장애인도 희미한 음악 소리를 듣는다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충격적이었어요. 그렇다면 장애란 막힘이 아니라 다 뚫리지 않음이겠군요. 그러니 조심해야겠어요. 그들을 좀 더 소중히 해야겠어요. 다 들릴 때까지, 마저 뚫릴 때까지.

'귀'를 자른다는 말은 세상에 대한 거부행위이지요. 듣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겠지요. 아니 듣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에 대한 역설이겠지요. 그러할진대 가엾은 귀는 모든 소리를 들어도, 죽을 만큼 아파도 울어본 적 없다 하네요.

또한 귀가 가장 나중까지 살아있는 감각기관이란 거 아시죠? 세상 모든 소리의 성전인 귀. 귀를 자른 사람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 모두 결국 소리를 찾으려 발버둥친 거지요. 네루다에게 보내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를 채집한 우편배달부 마리오처럼. 지금 당신에게 들리는 아름다운 소리 있다면 무덤 밖까지 보내는 귀의 봉사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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