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나는 무수한 공간을 스치며 생활했다. 집, 사무실, 크고 작은 길, 상점, 하늘…. 무심히 스쳐왔지만 실은 나의 감정과 감성을 이루는 중요한 지점에 '공간'이 있다.
우리는 부동산의 가치로, 편리함의 가치로 공간을 재단하지만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집이란 풍경보다도 '한 영혼의 상태'이다."
내 영혼의 상태는, 우리 영혼은 과연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경험하게 되는 공간은 엄마의 품이다. 포근하고 안락한 그 공간에서 아기는 부드럽고 따뜻한 살결, 젖 내음, 심장소리를 느끼며 자란다.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한다. 이 경험은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확장된다. 엄마 품에서 집안 곳곳으로, 길거리로, 자연으로 확대되면서 공간을 경험한다. 그 공간들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추억을 만들어가고, 이야기를 쌓아나간다. 공간 속에서 개인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어려운 말로 건축이나 공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18세기 프랑스 신학자이자 건축 이론가인 마크 앙투안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 에드워드 호퍼의 '빈방의 햇빛', 작자 미상 '류이주 영정'을 통해 공간에 대한 간접 경험을 보여준다. 특히 '오미동가도'는 지리산 남쪽 끝자락, 운조루의 건축 철학을 보여준다. 철저하게 거주하는 사람의 경험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건축은 자신을 바라보라고 외치지 않고 나를 세상 속에 자리 잡게 한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만드는 매개체로서의 건축을 보여준다.
미국의 자연주의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살았던 윌든 호수도 찾아가본다. 삶의 본질을 마주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 소로는, 자기 손으로 집을 짓고 소박하고 정직한 방법으로 자신과 가족을 벌어먹인다면 누구나 시적 재능이 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소박한 오두막과 호수는 소로의 삶 전체를 이야기해준다. 테이트모던 갤러리의 리모델링 과정, 덴마크 루이지아나 현대미술관 건축 과정 등은 건축이 어떻게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가에 대한 과정을 보여준다.
공간은 세상의 삶을 공명하고, 우리는 공간이라는 악기 속을 거니는 연주자인 동시에 감상자다.
저자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공감시키기 위해 영화와 그림 등을 통해 이야기한다. 시대를 초월한 이미지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강한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먼저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기를 제안한다. 빛을 이야기하기 전에 새벽 안개와 밤하늘에 젖어 보는 일, 냄새를 분석하기 전에 비 온 뒤의 비릿한 골목길을 걸어보는 일, 촉각을 설명하기 전에 맨발로 오솔길을 걸어보는 일…. 이런 실제의 경험이 각자의 삶에서 하나의 의미로 자리 잡는다. 책장을 덮으니 주변의 온갖 공간이 새롭게 다가온다. 매일 오가는 자동차 안도, 사무실 책상도 공간에 대한 나의 성찰을 기다리고 있다. 350쪽, 1만6천원.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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