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면접 시험장(場). 심사관이 물었다.
'자네는 호랑이와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는가?'
'예, 무서워하지 않겠습니다.'
'됐어, 합격!'
무슨 채용 시험이기에 호랑이와 귀신 얘기가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포수나 무당 면허 시험이 아닌 구한말 개화기(開化期) 순검(巡檢'경찰관) 채용 시험 얘기다. 조선황실 경찰고문이었던 스트리프 링 씨가 '한국 경찰의 임무는 호랑이와 귀신(미신)의 공포로부터 민중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했을 만큼 당시엔 호환(虎患)과 미신의 공포가 심했다. 따라서 순검 채용도 호랑이 잘 잡는 포수를 특채하거나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겠다는 담력 센 젊은이를 뽑았다. 당연히 민중들에게 순검은 호랑이도 귀신도 겁내지 않는 강하고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고 신뢰도 얻었다.
요즘처럼 시위대에게 얻어맞고 짓밟히는 순검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반면 그런 막강한 힘과 신뢰를 이용해 공권력 봉사보다는 자신의 사(私)적인 원수를 갚으려 순사(巡査'경찰관)를 지원한 사람도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 1894년 울릉도에 일본인 세력과 거문도에서 이주한 세력이 대립했을 때 일본 세력을 업은 도사(島司)가 거문도 세력에 의해 암살을 당하자 당시 죽임을 당한 도사의 아들 하나가 구사일생 살아남아 성장한 뒤 부모 원수를 갚기 위해 순사가 됐다. 그러나 울릉도로 자원해 왔을 때는 이미 원수는 병들어 죽은 뒤임을 알고 순사복을 벗어 갈기갈기 찢어 바다에 버리고 나왔다는 이야기다.
그런 일화처럼 천주교 박해 시대 20냥을 주면 풀어주고 돈 안 내면 재산을 강탈하기도 한 왕조 말엽의 막강한 경찰력은 공권력(公權力)이 아니라 사익(私益)을 챙기는 이른바 사경(私警)의 측면이 강했다. 구한말 무렵엔 부패한 대신(大臣)들이 집안에 월급 주는 사경들을 모아 거느리며 뇌물 받아먹다 들키게 되면 고발인을 자기 집 창고에 가둬 입을 막아버리는 등 악폐가 극심했다.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 이제순의 사경 사건 같은 것이 그런 예다(독립신문 1896년 10월 10일자).
100여 년이 지난 이 민주화 시대에 또다시 권력 쥔 일부 국회의원들이 보좌관 등 공조직을 사경처럼 부려 먹으며 정치를 농단, 구한말 망국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다. 당리당략이 부딪칠 때마다 토론과 민주적 표결 대신 쇠망치를 든 젊은 보좌관들을 동원해 의회정치를 농락하는 악폐가 구한말 부패 권문(權門), 파당의 '사경 정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오늘날의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구한말 세도가(勢道家)의 사경들은 자신의 철학이나 양심과 관계없이 주인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 밥줄을 뺏기지 않으려면 억지 싸움에 끼어들어 몸을 바쳐야 한다. 권력자로부터 임금을 받으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부패한 권력이 돈과 힘으로 젊은이들의 양심과 영혼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보좌관들은 회의장을 막고 망치로 문을 부수라는 명령 앞에 '의원님, 이건 아닙니다'고 했다가는 바로 보따리를 싸야 한다. 이 살얼음판 같은 취업난 속에… . 그런 젊은이들의 생존의 약점과 나랏돈으로 주는 월급을 제 돈 주는 양 미끼로 삼아 탈법과 폭력을 부추기고 노예처럼 부려 먹는 그 죄는 하늘이 무서운 죄다. 자신은 뒷구멍에 앉아 온갖 권모술수와 꼼수를 꾸며내고 험난한 싸움판에는 젊은 사경을 풀어 몸싸움을 시켜 제 잇속 챙기는 자들은 날강도보다 더 비겁하고 악랄한 공공의 적이다. 2040 세대들이 트위터 속에서 저항하고 비꼬는 세태도 바로 그런 기득권 부패가 싫다는 거다. 지금의 경찰관 면접시험 때는 어떤 질문이 나와야 할까.
'자네는 조폭과 좌파 시위꾼을 무서워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는가?'일까. 아니면 '싸움 내보낸 국회의원과 보좌관, 두 명 중 한 명만 체포하라면 누구를 먼저 체포하겠느냐?'일까. 수석 합격자는 어쩌면 이렇게 대답할지 모른다. '먹고살려고 싸움터에 밀려나온 불쌍한 보좌관을 체포하겠습니다. 이유는 국회의원을 닭장차에 태우면 차 안에 썩는 냄새가 나니까요.'
여당이 하자는 국책 사업은 말 바꿔가며 반대하는 일부 좌파 의원들, 불법 폭력시위장마다 감초처럼 등장하는 일부 극렬 직업 시위꾼들은 어딘가에서 지령(指令) 내리는 세력의 사경과 다름없다. 다시 한 번 되새긴다. 공권력이 풀 죽고 사경이 더 설치게 되면 그 나라는 반드시 기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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