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위대한 경제학자 슘페터(Joseph A. Schumpeter)의 '경제발전론' 출간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0월 말 슘페터가 젊은 시절 공부하고 가르치며 활동했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경제발전론' 출간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유럽진화경제학회 주최로 열렸는데, 이 학술대회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혁신'(innovation)이었다.
슘페터는 '경제발전론'에서 경제발전의 동력은 혁신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의 대표적 저서이고 경제학의 고전 중 하나인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는 혁신의 본질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로 보았다. 낡은 것을 고수하며 늘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창조하는 과정이 창조적 파괴이다. 슘페터는 이러한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의 본질적 사실이며 창조적 파괴가 없으면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창조적 파괴 과정으로서의 혁신 개념은 이후 경제발전을 다루는 거의 모든 이론과 정책 토론에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되었다. 1990년대 들어 지식기반경제가 출현하면서 혁신 개념은 창의성(creativity) 개념과 결합되어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글로벌 경쟁이 강화되고 있는 지식기반경제에서는 창의성에 기초한 혁신이 일어나야 경쟁우위를 획득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거의 모든 경제발전론의 중심적 주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창의성의 원천에 관한 수많은 이론이 있다. 개인의 타고난 천부적 자질 즉 천재성으로부터 창의성을 설명하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개인과 조직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으로부터 설명하는 관점도 있다. 사회문화적 요소를 경제발전 요인으로 포함시키는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론에서는 후자의 관점을 중시한다. 즉 혁신을 일으키는 창의성은 개인과 조직의 자율성과 사회의 개방성과 다양성이라는 사회문화적 조건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창의성은 이질성에서 나온다"는 명제가 주목되고 있다. 이 명제는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이 한 조직 속에 섞여 있어야 그 조직이 창의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새로운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질적이고 획일적인 조직문화에서는 창의성이 나오기 어렵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조직 내에서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할 때 그 조직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명제는 크고 작은 조직과 지역경제와 국민경제에도 해당된다.
창조경제론에 의하면,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사회가 동질적이고 획일적이어서는 안 되고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고 서로 다른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가치와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해야 역동적 지역경제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역발전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이념과 정책을 지향하는 정당들이 서로 경쟁하는 정치적 다양성이 실현되어야 지역사회가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원래 시장에서 독점이 지배하면 경쟁의 결여로 경제가 정체되는 경향이 있다. 정치시장도 마찬가지다. 영남이나 호남과 같이 하나의 정당이 수십 년간 독점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정치적 경쟁이 없어서 사회가 활력이 떨어지고 정체하기 쉽다. 나라 전체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하나의 정당이 압도적인 우세 하에 장기집권하고 있는 상황은 지역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영호남이 동반 침체하고 있는 주된 요인은 중앙집권-수도권 집중체제이지만 지역 내의 정치적 독점체제로 인한 정치적 다양성의 결여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내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영남과 호남 지역이 일당 독점체제를 창조적으로 파괴하여 정치적 다양성을 실현해야 두 지역의 역동적인 장기적 발전과 나아가 나라 전체의 균형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형기/경북대 교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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