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그래요 국화

몇 해 째 국화는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다

몇 해 째 국화는 모락모락 죽음을 쌓는다

모든 육체엔 황량하고 구슬픈 노래가 담겨 있다

눈감고 들으면

버려진 뜰에 동그마니 뒤틀리는 국화

죽음은 죽음으로 다시 출구를 짓고

사랑도 기쁨도 어둠의 저편에서 노랗다

그래요 국화

꽃잎

배배꼰다

막막한가보다, 다시 또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한창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

이수진

죽음과 국화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이제 국화는 죽음의 꽃이 되었어요. 상가 입구를 장식하는 국화, 리본마다 살아있는 자들의 펄럭이는 만장을 대신하는 국화. 그래요 국화 한 송이 바치며 명복을 비는 행위, 그 순간 우리는 꽃이자 영혼인 접경을 경험해요. 잠시나마 꽃과 함께 깨끗하고 엄숙한 순간에 들어요.

죽음의 입구와 출구까지 동행하는 국화, 자식보다 먼저 영접하고 자식보다 나중까지 배웅하는 희디흰 소임을 국화가 자처했을까요. 너무 화려해서 불편한 그런 꽃 아니며 너무 왜소해서 초라하지 않은 미더운 꽃, 그래요 국화.

뒤뜰에서 배배 꼬는 실국화, 어디가 아프실까. 우리 가는 길 막막해도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니 이제 구슬픈 노래 거두어요. 사랑도 기쁨도 어둠 저편에서 보면 다 노랗다지 않나요. 그러니 국화 잘 가요. 그래요 국화 또 만나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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