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대학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는 필자는 지역민이 외래진료 후 진료의뢰서를 발부받아 서울로 가는 쏠림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 용기를 내 왜 서울로 진료받으러 가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생활의 중심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이뤄지므로 의료 또한 서울이 더 나을 것이란 인식이 첫 번째 이유였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답변도 들었다. 어느 환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5개 종합병원(경북대'계명대동산'영남대'대구가톨릭대'대구파티마병원)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 의료수준이 서울보다 크게 못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지역병원들은 서울병원의 친절서비스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의미 있게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의 병원들은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홀대하는 게 아니라 뭔가 '고객을 왕'처럼 대접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친절과 이용 편의 등 서비스는 서울?
그러면 대구시민은 대구지역 병원을 어느 정도 이용하고 신뢰할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시민이 2009년 대구지역 병원을 이용한 비율은 85.9%였다. 그다음은 서울지역 병원 11.8%, 부산지역 병원 0.8% 순이었다. 이 자료에서 대구는 서울을 제외하고 지역병원을 이용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대구시민 일부가 서울지역 병원을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민들이 서울 대형병원으로 몰려가는 이유는 의료기술보다는 친절과 이용 편의 등 서비스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흥미롭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은 대구지역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대구와 서울지역 주요 병원 간 의료기술과 서비스 품질 차이를 조사한 논문을 최근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를 통해 발표했다.
평가 대상은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서울 주요 대형병원 4곳과 경북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대구파티마병원 등 대구 대형병원 5곳이었다. 조사는 대구시민 중 서울 대형병원을 실제로 이용한 사람과 비이용자를 구분해 실시됐다. 이용자와 비이용자는 모두 서비스에서 서울 대형병원이 월등하다고 응답한 반면, 의료진의 전문성 등을 평가하는 의료기술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용자가 느낀 서비스 점수는 5점 만점에 서울이 4.26점으로 대구 3.75점보다 월등히 앞섰으나, 의료기술은 서울(3.78), 대구(3.55)가 별 차이 없었다. 또 비이용자가 평가한 서비스 점수도 서울(4.11)이 대구(3.58)에 크게 앞섰지만, 의료기술은 서울(3.52)과 대구(3.33)가 비슷했다. 이 논문은 '지방 대형병원이 지역주민 인지도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서비스 문제는 대구시가 2007년부터 펼치고 있는 '의료서비스 이용실태 및 만족도 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코리아 리서치가 지난해 대구시민 1천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지역 의료서비스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77.9점으로 나타났다. 이 점수는 2007년 73.7점, 2009년 76.6점에 비해서는 조금 향상됐다. 하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서비스는 여전히 C학점에 머물고 있다. 대구시 보건과 관계자는 "서비스 첫 번째 목표 점수는 80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고객감동 구현하는 '메디시티' 돼야
이 같은 통계자료를 살펴봤을 때 지역민이 지역 병원을 신뢰하면서 이곳에서 만족할 만한 진료를 받고, 반드시 원정 진료를 가야 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자명해진다.
우선, 지역 의료진은 전국적으로 의료수준이 서울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의학연구와 임상연구 발전에 힘을 쏟아야 한다. 또 의료기술이 서울과 비교해 별 차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필요하다. 국가의 첨단의료복합단지사업이 대구에서 진행되고 있고, 시 차원에서 '메디시티 대구'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의료 질과 인프라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처럼 실력을 갖춘 의료진은 병원 또한 시민이 이용하는 서비스기관 중 하나라는 사고 아래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친절 마인드로 무장하고, 필히 실천에 옮겨야 한다. '왠지 모르게 의사를 만날 때는 주눅이 들고 저자세가 된다. 왜냐하면 의사는 많이 배운 최고 지성인인데다 내 건강을 담보하고 있으므로….' 이는 이제 옛말이 되어야 한다.
말로 하는 것처럼 금방 쉽게 다 이룰 수는 없겠다. 하지만 의료진이 뛰어난 의료기술을 보유하고 친절하면서도 수준 높은 병원서비스를 지향한다면 굳이 지역민이 서울로 원정 진료를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배정민 영남대병원 외과 교수
정리'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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