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고정관념의 비밀

인간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관해 알아보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각각 세 명으로 이루어진 흰 셔츠와 검은 셔츠를 입은 두 팀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놀이인데 40초 동안 흰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를 맞히는 게임이다. 물론 이 실험은 패스의 횟수를 맞히는 게 목적이 아니고 인간은 보고 싶어하거나, 예측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된 실험이다. 40초의 영상 중 9초 동안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등장해 카메라 앞에서 가슴을 두들기기까지 하는데 나중에 화면에서 본 것을 얘기하라고 했을 때 50% 정도의 사람들이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열중한 나머지 고릴라를 보지 못하더라는 실험이다. 나는 실험 전에 패스 횟수를 정확히 맞히지 못하는 사람은 인지 능력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강한 암시를 준 후 10여 명의 사람에게 위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테스트해 본 사람들 중 고릴라를 발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인지 능력이 이렇게 어이없는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많은 것을 시사한다.

1천억 개의 뇌세포로 구성된 인간의 뇌는 수없이 많은 회로로 서로 연결되어 우리가 매일 접하는 4만, 5만 개가량의 정보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저장한다. 뇌는 무게가 체중의 2%밖에 되지 않는 작은 장기이지만 우리 몸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18%를 소비하는 가장 활동적인 장기이다. 이렇게 항상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뇌는 아낄 수 있는 에너지는 가급적 절약해서 다른 일에 쓰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므로 불필요한 작업은 생략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그래서 매일 만나는 가족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 처음부터 기억을 더듬어보지 않아도 보는 순간 기존의 뇌 회로가 활성화되면서 누군지를 즉시 알 수가 있고, 퇴근길에 운전할 때는 집으로 가는 경로를 생각해 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이렇게 신속하고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과정과 느리지만 심사숙고 과정을 동반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고정관념이란 것은 아마도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사고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노화 방지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필자는 진료의 특성상 건강 관리를 맡기신 분들을 오랜 기간 동안 가까이 대하면서 그분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과정을 관찰할 기회가 많은 편이다. 경험에 의하면 많은 분들이 나이가 들수록 내 생각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해진다. 물론 여전히 젊을 때처럼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뇌가 에너지의 절약을 위해 이미 만들어진 회로, 즉 고정관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새로운 생각을 한다는 것은 뇌세포를 연결하는 새로운 회로를 만든다는 뜻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실에 대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생각해 보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그렇기에 기존에 자주 사용하던 뇌 회로를 이용해서 결론을 내리면 생각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에너지를 절약하여 노화로 손상된 신체 각 부분 장기의 복구에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렇게 극명하게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도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무의식 속의 고정관념의 작동에 의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속도와 다양성이 생명인 현대사회에서 남의 얘기까지 귀담아듣는다는 것은 어쩌면 엄청난 에너지의 낭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우리의 행동 중에 일상의 착각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내 생각을 무조건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고 있는 고정관념의 장벽을 걷고 진실을 대면할 포용력을 가질 때 우리 사회는 다시 화합할 수 있을 것이다.

강민구/KMG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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