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평생학습에 길을 묻다]⑩마을만들기, 사람만들기-21세기 코드

시장이 직접 '평생학습' 정착…몰락하던 가케가와, 명품도시 변신

일본 시즈오카현 가케가와시 천수각은 가케가와시의 대표적인 마을만들기 사업의 하나인 36경 가운데 1경으로 꼽힌다.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특색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시민들의 주머니돈을 풀어서 천수각 전체를 목조로 복원했다.
일본 시즈오카현 가케가와시 천수각은 가케가와시의 대표적인 마을만들기 사업의 하나인 36경 가운데 1경으로 꼽힌다.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특색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시민들의 주머니돈을 풀어서 천수각 전체를 목조로 복원했다.
신무라 준이치 전 시장
신무라 준이치 전 시장
마츠이 사부로 현 시장
마츠이 사부로 현 시장

교육열에서 세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우리나라의 25~64세 성인 평생학습 참여율은 23.4%로 선진국 평균 44%의 절반이다. OECD가 발표한 이 통계는 우리나라가 성인들을 위한 평생학습 기회 제공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유네스코가 지나간 10년을 평생학습사회 조성기간으로 선포했고, 전 세계 선진국가와 유명도시들이 의식 개혁과 도시 발전의 원동력으로 성인평생학습을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다. 21세기 성인학습 트렌드는 장애인, 비장애인을 망라하고, 일반인과 사회적 약자층을 아우른다. 성인학습이 활성화된 사회에서는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친다. 배우면서 자립하고, 자립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예산을 덜 쓴다. 평생학습이 활성화된 도시는 주민만족도가 높아진다. 세계 첫 평생학습도시로 선포된 가케가와시의 만족도는 무려 83%이다. 죽어가던 시골 변방 도시에서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강소도시로 거듭난 가케가와시의 21세기 전략에서 우리는 배울 점이 없을까?

◇지역을 알아야 지역이 발전한다

일본 시즈오카현 가케가와시를 1977년부터 2006년까지 28년간 이끈 신무라 준이치 전 시장(일본 보덕운동본부 총회장)은 내가 사는 도시가 아름다운 도시, 힘있는 도시라는 의식을 갖게끔 해주지 않으면 주민들은 떠나간다고 강조한다. 그는 시장이 되기 이전부터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평생학습을 실천했다. 고도성장기를 맞아 많은 사람이 도시로 떠나버린 현실에서 남은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에서 뜻이 맞는 36명을 모아서 시민평생학습대학을 시작했다. 아름다운 산촌에 미나미 알프스를 만들고 주민생애학습센터를 만들어 '나의 산, 나의 강, 나의 대학'이라고 학습목표를 적었다. 여기에 '나의 숲, 나의 마을, 나의 교실'을 연결시키고, '나의 집, 나의 밭, 나의 혼'을 심었다. 그렇게 신무라식 평생학습이 지역으로 파고들던 1977년 가케가와 시장이 갑자기 사망했다. 가케가와 시의회 의원들이 신무라 씨를 찾아와 고향을 위해 일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바로 시장선거에 출마하여 공산당을 눌러 이겼다.

◇처음에는 평생학습 싫어해요

새 시장이 평생학습을 도입하자 시민들은 싫어했다. 현 마츠이 시장도 평생학습을 왕성하게 펴고 있다.

"평생학습의 긴 역사를 지닌 가케가와 시민들은 다방면에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과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마츠이 가케가와 시장의 말대로 가케가와 시민과 시청이 완전 한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정부를 지양하기 위해서 공무원 업무 가운데 쓰레기 처리, 환경 지키기, 청소 업무 등은 주민에게 넘겼다. 주민대표가 이 일을 직접 맡아서 한다. 시청에는 마을만들기와 사람만들기 업무를 맡는 생애학습만들기과(평생학습과)가 있다. 마을 만들기와 사람 만들기에 주력하는 생애학습만들기과는 시청 내 서열 2위이다. 총무과 다음으로 엘리트 인재들이 배치된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평생학습을 통해 개인의 자립, 마을의 자립을 배우고 공생을 실천합니다. 지역자립과 주민자립은 지방자치가 지역공동체로 나아가는 원동력입니다." 마츠이 가케가와 현 시장은 주민 만족도가 83%에 이르는 것도 생애학습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생애학습을 통해 주민들은 자립과 공생의식을 실천한다.

◇경제 없는 보덕은 거짓, 보덕 없는 경제는 범죄

"자립과 공생의 정신을 간직한 이곳 주민들은 번 돈을 혼자 쓰지 않고, 지역사회를 위해 베풀고 나눈다. 시장직에서 물러난 신무라 씨는 가케가와의 경제도덕운동 내지 생활실천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보덕운동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사람만들기에 나선다. 가케가와 천수각과 담을 같이하고 있는 일본 보덕운동총본부 입구문 양 기둥에는 '보덕문' '경제문'이 새겨져 있다. 경제 없는 보덕운동은 거짓이고, 보덕이 없는 경제는 범죄라고 믿는 것이다. 보덕사상을 다 배울 필요는 없지만, 이 부분만큼은 우리나라 재벌들이 배울 만한 대목이다. 보덕정신은 경제는 나눠야 진정한 빛을 발휘한다는 정신으로 2002년 북경에, 최근에는 부산에도 수입되었다.

◇도와나니카 학사 프로그램 개발

느림의 미학을 지닌 평온한 가케가와 주민들은 세계인이 선호하는 녹차와 와사비 등을 재배하면서 높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과거 가케가와시는 대학 유치 운동을 편 적이 있다. 하지만 인근 지자체가 대학을 먼저 유치하여 불발로 끝났다. 포기하지 않고 딴 대안을 찾았다. 도와나니카 학사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도와나니카 학사 프로그램은 정식 대학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평생학습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기획된 2년 교육과정이다. 가케가와시는 인근에 위치한 대학의 교수, 민간연구소 대표, 기업 관계자, 공무원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도와나니카 학사 프로그램을 통하여 평생학습 지도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2년 과정인 도와나니카 학사 프로그램에서 배출된 평생운동 지도자는 지역만들기 현장 지도자로 역할을 맡는다. 대학 유치에 실패한 가케가와시는 다른 방법으로 지역 살리기를 시도했다. 전국에 800개나 되는 대학 대신 일본에 53개밖에 없는 신칸센 역사 유치에 나섰다. 그게 지역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시장의 결정을 시민들이 비용 분담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관광코스 개발에서 리더 양성까지

"대학 하나 유지하려면 390억원의 시민 세금이 들어갑니다. 그것보다 신칸센 역사를 유치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주민들은 그 비용을 나눠서 냈습니다." 이 신칸센을 타고, 관광객들이 슬로시티이자 세계 최고의 성인학습률을 자랑하는 가케가와로 몰려든다. 가케가와 주민들을 자발적으로 천수각을 포함한 36경을 조성했고, 배전박스는 모두 지중화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유메이 고속도로도 일반 고속도로와는 다르게 아름답다. 디자인이 도시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고속도로 진입로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설계 변경비 역시 주민들이 냈다. 지역을 배우면서 리더가 생겨나고, 리더들이 지역의 발전을 이끄는 선순환구조가 계속되는 것이다.

◇언론'시청'주민이 만들어낸 걸작

"주민들은 행정공보나 행정뉴스는 잘 믿지 않습니다. 언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신무라 전 시장은 매달 기자실에 내려가서 평생학습에 관해 설명하고, 국장 과장 담당자 회의를 매주 열어서 설득하고 지시하고 토론한다. 그 내용 전부를 기록하고 인쇄물로 돌리면서 공무원들도 평생학습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후 진정성을 갖고 평생학습에 임했다. 이번 일본 취재 여행 내내 동행한 가케가와 시청 나카지마 계장을 비롯해 나카야마 과장, 사와 노부미 지역생애학습센터장(전 공무원) 등에게서 그런 신뢰를 느꼈다. "평생학습이야말로 도시를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힘을 지녔다"고 믿고 실천한 신무라 전 시장은 가케가와시를 편안하고 행복한 슬로시티, 평생학습으로 경쟁력을 지닌 강소도시로 부활시켰다.

일본 가케가와에서 최미화 뉴미디어국장 magohalmi@msnet.co.kr

사진'박순국 전 매일신문 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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