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마음의 책] 자본이라는 폭력 앞에 한없이 나약한 구상들

비즈니스/박범신 지음/자음과 모음 펴냄

작가 박범신의 장편소설이다. 박범신의 많은 작품이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사회비판에 무게를 둔 작품이다. 인간 내면을 파고들 때 박범신이 보여주었던 '깊은 심연'에 이르지 못하고, '이분법적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다.

서해안에 ㅁ시가 있다. 이 도시는 공업단지와 신항구, 고층 아파트, 외제차로 치장한 신도시와 신도시의 쓰레기하치장으로 전락한 구도시로 구분된다. 신도시 사람들이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할 때, 구도시 사람들은 신도시 사람의 자동차를 닦기 위해, 식당 허드렛일을 위해, 아이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분투한다. 어떤 이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비린내 나는 일을 하고, 어떤 어머니는 아이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팔고, 어떤 아버지는 '아름다운 옛날들'을 지키기 위해 도둑질을 한다.

고위층과 부잣집만 골라 터는 도둑은 '타잔'으로 통한다. 나무를 타고 날아다니는 정글의 '타잔'처럼 가볍게 담을 뛰어넘는다. 사람들은 그를 동경하기까지 하며, 그를 사칭하는 도둑들도 등장하는 형국이다.

박범신은 이 작품을 통해 물불 가리지 않는 경쟁사회 '한국'을 비판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회의 거대한 폭력에 노출된 나약한 인간의 모습과 사회의 모순, 비인간화를 비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눈먼 경쟁이 아닌 '따뜻한 인간성'을 회복하자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식은 이분법적이어서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자식의 고액 과외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파는 어머니, 추억과 희망이 있었던 옛 동네와 인간성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남의 집을 터는 도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소설에서 그들의 행위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처럼 포장되고, 몸 파는 어머니와 도둑질하는 아버지는 선한 피해자로 그려진다.

비판받아야 할 대상은 우리 사회 구조가 아니라, 도둑질을 하는 아버지와 몸을 파는 어머니다. 창녀 노릇이 아니면 자식 과외비를 댈 수 없다면 고액과외를 안 시키는 것이 옳다. 고액 과외를 못 받아서 명문대학에 못 간다면, 못 가는 게 옳다. 도둑질하지 않으면 추억과 희망을 지킬 수 없다면, 추억과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 옳다. 몸을 팔고, 도둑질을 하는 그들이 세상을 탓하는 것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정당하지 않다.

'몸 팔아 고액과외 안 시키면 명문대학 못 가는 망할 대한민국!' 혹은 '도둑질 않고는 희망을 지킬 수 없는 미친 한국!'이라고 몰아세우는 태도는 무지한 청년들 귀에 솔깃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왜곡이고 호도다.

토익점수 700점을 못 받아도 한국 10대 대기업에 취직이 되어야 건강한 사회인가.(2010년 10대 기업 신입사원 응시자의 평균 토익점수는 700점이 되지 않았다. 준비는 하지 않고 합격만 바란 것이다. 자기 할 일은 도외시하고, 대가를 바라는 것은 정당한가?)

중소기업에 취직하라고 하면 '비싼 등록금 내며 대학 나왔는데, 그럴 수는 없다. 대학 졸업하고도 취직이 안 되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라고 핏대를 세운다. 그에 질세라 학자나 정치인, 연예인, 작가들은 젊은이들의 모든 불행을 기성세대의 잘못 때문이라고 떠들어대며 인기몰이에 나선다.

10대 대기업, 공무원, 공기업에 취직할 수 없다면 그다음으로 눈을 돌리는 게 옳다. 한쪽은 사람을 못 구해 난리고, 한쪽은 일자리가 없어 난리란다. 사회의 구조를 탓할 게 아니라, 자기 정신상태를 돌아봐야 한다. 잘난 한국인이 거부한 자리에 60만 명의 외국인이 근무하고 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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