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빈티지 패션' 원조…봉덕시장 구제 골목

100여 점포 '알뜰 소비자' 손짓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구제 골목인 봉덕시장 구제 골목에는 100여 개의 구제 옷가게가 몰려 있어 알뜰 소비자들이 즐겨 찾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구제 골목인 봉덕시장 구제 골목에는 100여 개의 구제 옷가게가 몰려 있어 알뜰 소비자들이 즐겨 찾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여기가 대구에서 제일 오래된 구제 골목입니다."

대구에는 구제 의류를 취급하는 가게가 모여 있는 '구제 골목'이 많다. 서울의 광장시장, 부산 국제시장 등 다른 지역에도 구제 골목들이 있지만 대구는 그중에서도 구제 시장이 가장 활성화돼 있다.

동성로, 관문시장 등 곳곳에 구제 골목이 있지만 대구 최초의 구제 골목은 '봉덕시장 구제 골목'이다. 60년이라는 골목의 역사만큼 세월에 따라 미국, 일본, 국산 등 취급하는 구제 의류는 변해왔지만 저렴한 가격과 예상치 못했던 옷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어 100여 개의 구제 가게가 모여 있는 봉덕시장 구제 골목에는 항상 마니아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미국 구호품을 팔던 봉덕시장 구제 골목

봉덕시장은 1950년대 초반 피란민들이 난전 장사를 하며 생겨난 자연발생적인 시장이다. 근처 주한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수입 식품이나 생활용품을 판 것이 그 시작이다. 구제 의류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됐다. 당시 미국의 구호품으로 들어온 의류를 판매한 것이 그 시작이다.

50여 년 전부터 골목에서 구제 의류를 취급한 한 상인은 "당시 고아원 같은 곳에 들어가는 구호품 중 옷은 우리나라 체형에 맞지 않아 시장에 많이 나왔다"며 "구호품 중에는 헌 옷들도 많았지만 새 옷도 꽤 있었다"고 말했다.

1960, 70년대 골목에서 구제 의류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구에서도 알아주는 '멋쟁이'들이었다. 근처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여성 군무원들과 80년대 중반 하양으로 옮겨간 당시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의 여대생들이 골목을 자주 찾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기성복이 미국에서 들어오는 수입 구제 제품에 비해 디자인이나 품질이 부족했기 때문에 멋쟁이들은 골목에서 의류 쇼핑을 했다. 한 상인은 "지금은 우리나라 옷이 세계 어느 나라 옷보다 훌륭하지만 그때는 멋 부린다는 사람들은 다 구제 옷을 샀다"며 "다만 미국 구제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사이즈가 맞지 않아 몸에 맞게 수선해서 입었다"고 말했다.

◆골목 10집 중 8집은 국산 구제

'구제'는 오래되고 낡은 옷을 지칭하는 용어지만 요즘에는 새 옷들도 많다. 부도난 의류공장이나 폐업한 옷가게 등에서 나온 옷들도 구제 사이에 섞여 있기 때문이다. 헌 옷들도 50년대부터 60년대까지는 미국에서 그 이후에는 일본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들여왔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국산 구제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국산 구제는 헌옷수거함에서 쓸 만한 옷들을 걸러 깨끗하게 세탁한 뒤 판매된다. 골목의 한 상인은 "지금 골목에 있는 가게 중 80% 정도는 국산 구제를 취급한다"며 "우리나라 옷도 품질이나 디자인이 훌륭하다 보니 수거된 옷 중에도 쓸 만한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국산 구제는 수입 구제에 비해 마진이 많이 남는데다 옷의 질이 여느 나라 못지않게 좋아지면서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 봉덕시장 구제 골목에도 가게가 비기만 하면 구제 가게가 들어서 지금은 100여 개의 구제 가게가 몰려 있다. 도매상에서 직접 골라온 물건들은 가게 주인들의 개성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 상인은 "구제라고 전부 천원짜리 몇 장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며 "우리 집만 해도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구제들이라 국산 구제보다 2배 이상 비싸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구제 패션

2000년대 이후에는 고물가 속에 실속을 찾는 알뜰 소비자가 늘면서 구제 골목에도 꾸준히 손님들이 몰린다. 운이 좋으면 고가의 명품 브랜드 제품도 건질 수 있어 발 빠르고 부지런한 소비자들은 가끔 '로또'도 맞는다. 구제 골목을 자주 찾는다는 임숙영(32'여) 씨는 "일본 구제를 파는 단골가게를 한 달에 한두 번씩 돌아다니며 옷을 산다"며 "일본 구제는 새 제품도 많아 가끔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거의 9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어 횡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5, 6년 전부터는 '빈티지패션'이라 불리는 구제 스타일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면서 20대 젊은 손님들도 골목에 많아졌다. 자연스레 젊은 상인들도 늘고 있다. 상인들은 "구제가 그저 싸고 헌 옷이라는 생각에서 최근에는 패션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좋다"며 "겨울에는 코트나 무스탕 등 다소 비싼 옷들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니 많이들 오셔서 따뜻한 겨울을 보냈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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