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한다고 생각하면 이 나이까지 못해. 여기는 그냥 놀이터야."
윤순아(81) 할머니는 봉덕시장 구제골목 60년 세월의 산 증인이다. 60여년 전 피란민들이 난전을 펴고 장사를 할 때부터 시장을 지켜봤다. 판자로 건물 모양새만 갖춘 가게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할머니는 꽃다운 20대 초반이었다. "시집와서 얼마 안 돼 장사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지. 그때는 '하꼬방'이라고 부르는 구멍 숭숭 뚫린 판잣집에서 장사를 했어."
할머니의 고향은 제주도다.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대구에 온 것이 22살 때. 대구에 와서 봉덕시장에서 시작한 구제의류 장사를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하고 있다. 할머니는 평생을 대구에 살았지만 봉덕시장 외엔 대구에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 집이 봉덕시장 옆에 있는데다 잠자는 시간 외엔 하루 종일 가게에만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놀러 한 번 못 갔어. 놀아도 어디를 알아야 놀러 다닐 텐데 몰라서 지금까지 장사하는 거야."
할머니의 가게는 봉덕시장 구제의류 가게 1호점이다. 미국 구호품에서 흘러나온 옷을 구해 봉덕시장에서 팔기 시작했고 할머니가 골라온 옷들은 효성여대생들과 미군부대 여직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부모님이 일본에 사셔서 일본을 자주 오가다 보니 옷을 보는 눈이 생겼던 것 같아. 당시 대구사람들은 브래지어나 거들 같은 여성속옷을 몰라서 내가 이런 게 있다고 알려주고는 했지."
가게 안에는 할머니가 골라 직접 세탁까지 한 옷들이 걸려있다. 여전히 세련된 옷들을 골라오는 할머니 가게에는 예전부터 단골이 많았다. 가게는 상호도 없고 간판도 없지만 옷과 할머니만을 보고 단골들이 줄을 이었다. "가게 이름 같은 게 없어. 없어도 알아서 다 찾아오니깐. 지금은 그 단골들이 다 세상 떠났지. 60년이나 지났으니깐."
할머니는 가게를 '놀이터'라고 표현했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고 놀아도 만날 사람도 없는데 가게만 나오면 사람 구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하루 2~3시간 자면서 하루 종일 일만 했지. 지금은 그냥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놀러 나오는 거야. 그래도 아직 다닐만 하니깐 힘 떨어질 때까지는 나올려고."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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