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과 예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의외로 교묘하게 얽혀드는 측면이 있다. 의사란 직업은 항상 생명과 건강을 다루고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특성상 인격적 수양과 철학을 갖추는 것은 필수요소다. 거기에 근간을 형성해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 되는 것이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하루종일 진료실에서 몸이 아픈 이들을 어루만져 줘야 하는 직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도 제격이다. 그렇다 보니 의사들 중에서는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 전문가 뺨칠 정도의 소양을 갖춘 이들이 꽤 많다. 이들은 '예술'과 '삶'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공정욱(51) 공정욱치과 원장
공 원장은 인생의 상당 부분을 연극에 올인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지금도 초이스 씨어터의 제작자로 힘든 연극계에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주고 있다.
그가 연극에 눈을 뜬 것은 고등학교 시절. 그때는 고작 해야 친구들끼리 친목동아리를 만들어 20, 30분짜리 콩트를 만들어보는 정도였다. 그리고 대학 진학 후 본격적으로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공 원장은 "지금도 당시 함께 연극을 했던 친구들이 문화계 곳곳에 포진해 있다"며 "졸업 후에도 10여년을 후배들 무대 조명을 봐 줄 정도로 열성을 쏟았는데 1998년 무렵 연극반 맥이 끊어진 것이 못내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2005년 드디어 '사건'을 만들었다. 연극을 좋아하고 즐기는 친구들과 모여 '극단 하나라도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보자'며 술잔을 기울이다 '이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극장을 만들자'고 논의가 급진전돼 버린 것. 그 자리에서 공 원장은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그날 밤 1천만원의 후원금이 마련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극단 마카'의 공연장이었다. 공연장이 부족하다 보니 몇 달을 연습해 고작 며칠 무대에 올리는 극단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공 원장은 "사실 출발은 후원자였지만 이것저것 속속들이 관여를 하다보니 그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잖았고, 결국 제작자의 역할을 맞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연습실 겸 공연장을 꾸미고 처음 무대에 올린 작품이 '해가지고 달이뜨고'라는 제목의 연극이었는데 한 달 동안 장기 공연을 하는 동안 객석이 꽉 찼고, 이후 앙코르 공연으로 다시 한 달 동안 장기공연을 이어갈 정도로 지역 연극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지금 그는 연말을 앞두고 한창 치과의사회 송년회 공연을 총괄기획'연출 하느라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다. 치과의사회 회원들 가운데서는 노래나 악기, 댄스 등에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직접 무대를 꾸미도록 하는 것. 대신 그는 이 아마추어들의 공연에 최고의 스태프를 꾸렸다. 황원구 수성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허브로드 작곡가인 최성철 씨 등 프로급 스태프들이 공연을 엮어내도록 한 것. 공 원장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직접 무대를 경험하게 하는데 공을 들이는 것은 단순 관객이 아니라 문화계를 든든하게 뒷받침해주는 '울트라 마니아'를 더 많이 키워내기 위함이다. 공 원장은 "프로급 스태프들과 함께 공연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함으로써 앞으로 공연을 볼 때 한층 넓은 시야를 갖도록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를 단순 소비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문화계를 지지해주는 후원자로 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마니아를 키워내는 것이 '문화 생산자'의 본분이라고 했다.
중년이지만 아직 청년의 '열정'을 가진 그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이렇게 무대를 경험해보고 남몰래 자신의 실력을 키워온 이들이 함께 모여 의료봉사와 문화봉사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감성 교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공 원장은 "치아를 치료해주는 봉사도 좋지만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봉사도 매력있지 않느냐"며 "공연을 통해 즐거움을 주고 그 수익금으로 또 다른 봉사를 할 수 있는 의사들의 모임을 만든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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