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진 문물 체험 신라 유학승들 귀국 후 나라 발전 큰 힙

일부는 현지에 정착도

많은 신라 승려들이 중국과 인도에서 유학했다. 유학승 가운데 일부는 학업을 마친 뒤 귀국했지만 현지에 정착한 승려들도 있었다.

중국 유학 후 귀국한 승려들 가운데 원광(圓光)과 자장(慈藏)이 대표적이다. 원광은 남조의 진(陳)나라로 유학을 떠나 학업을 마치고 600년 신라 사신들과 돌아왔다. 원광은 화랑이 가르침을 청하자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지어주었다. 자장은 636년 불교 경전을 연구하기 위해 제자 십여 명과 당나라로 갔다가 643년 선덕여왕의 요청에 따라 부처의 사리, 불경 등을 가지고 돌아왔다. 자장은 외적의 침략을 막는 호국 염원을 담아 황룡사에 9층 석탑을 세울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671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의상(義湘)은 문무왕이 벌이려 했던 여러 토목 공사를 말렸다. 특히 도성의 축성 계획을 포기하도록 조언해서 관철시켰다.

이들 외에도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서 공부했던 승전(勝詮), 밀교에 정통하며 당나라 고종의 딸을 치료해서 유명해진 혜통(惠通), 신라가 당나라군을 물리칠 수 있도록 기도해 실현했다는 명랑(明朗), 당나라와 주변 나라들에 명성을 떨친 순경(順璟), 도윤(道允), 순지(順之), 태현(太賢), 현휘(玄暉) 등이 유학을 마친 뒤 신라에 돌아와 활동한 승려들이다.

중국어와 한문을 쓰는 지식인과 중국의 제도를 이해하는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은 유학 중에 익힌 어학과 정치적인 식견을 발휘해 신라 조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귀국을 포기하고 중국에 정착한 유학승들은 수양과 불교 경전 번역 및 연구에 힘을 썼다. 대표적으로 15세에 중국으로 건너간 원측(圓測'613∼696년)은 불교 경전을 읽고 그 뜻을 모두 헤아릴 만큼 비범한 재능을 지녔다. 또 신라어 이외에 중국어, 산스크리트어 등 5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원측은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는데 그 중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는 티베트 대장경에 티베트어로 번역돼 실릴 만큼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밖에 원측의 제자 승장(勝藏), 선종(禪宗)의 일파인 정중종(淨衆宗)을 개창한 무상(無相), 제자들에 의해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은 김교각(金喬覺), 현장의 4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신방(神昉) 등이 중국에 정착해 활동한 신라의 승려들이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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