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돈 잘 쓰는 예술' 기부, 한국 부자들 아직 서툴다

경제력 세계 13위지만 기부력은 81위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써라'는 속담이 있다. 돈은 모으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거액을 기부해 화제가 된 김병호'김삼열 씨 부부는 "돈을 버는 것은 기술,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는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해 악덕 기업주로 이름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 카네기와 록펠러는 나눔문화를 실천한 기업가로 미국인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재단을 설립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자선사업을 통해 악덕 기업주의 이미지를 벗고 기부 천사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최근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큰 공을 세운 재불(在佛)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가 유산 2억원과 장서 9박스를 인천가톨릭대에 기증한 뒤 아름다운 생을 마감했다. 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천50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했다. 하지만 안 원장의 기부를 두고는 말이 많다.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정치적 의도가 내포된 행위라며 기부를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사다난했던 2011년이 저물어간다. 따뜻한 손길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연말을 맞아 한국의 기부문화를 점검해 봤다.

◆확산되는 기부문화

기부는 한 사회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지표다. 기부는 부의 재분배뿐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나라의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최근 1년 동안 기부를 한 사람의 비율은 36.4%였다. 1인당 평균 기부금액은 16만7천원이었으며 현금 기부자의 평균 기부횟수는 6.1회로 2009년보다 0.5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기부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45.8%가 그렇다고 답을 했으며 유산을 기부할 의사를 밝힌 응답자도 37.3%에 달했다.

기부 형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부는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깨어지고 있는 것. 최근 '프로보노'(pro bono)가 새로운 기부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프로보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기부하는 재능기부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보수로 변론하거나 자문에 응하는 등의 봉사활동을 의미한다.

기업들의 기부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불우이웃돕기 캠페인 기간에 거액을 내는 전통적인 기부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골프존문화재단은 지난달 27일 충남대에서 소외계층 3천600여 명에게 문화를 기부하는 '행복나눔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소통을 위한 젊은재단은 이달 3일 서울 송파구민회관에서 기부문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기부강연 콘서트를 열었다. 또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누리꾼들이 자사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적립해 기부하는 캠페인을 올해까지 전개하고 있다.

◆경제력 세계 13위'기부력 세계 81위

기부가 늘고 있지만 한국의 기부문화는 세계 13위 경제대국이라는 위상에 맞지 않게 여전히 척박하다. 지난해 영국 자선구호재단(CAF)과 여론 조사기관 갤럽이 함께 조사해 발표한 '2010년 세계기부지수'(WGI)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153개국 가운데 탄자니아와 함께 공동 81위에 올랐다. 스리랑카가 8위, 라오스와 시에라리온이 공동 11위인 점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순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개인 기부금 비율도 한국은 0.54%에 그쳐 미국(1.67%)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기업들의 기부문화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달 23일 열린 '제11회 국제기부문화심포지엄 기빙코리아 2011'에서 전상경 한양대 교수가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비금융 상장기업 1천700개사의 평균 기부액은 8억3천700만원으로 매출액 대비 0.12%, 영업이익 대비 1.69%에 불과했다. 이는 2001년 매출액 대비 0.13%, 영업이익 대비 2.39%보다 낮아진 수치다. 게다가 비금융 상장기업 중 기부금 지출이 전혀 없는 기업이 366개사, 100만원 이하인 기업이 471개사, 1천만원 이하인 기업이 794개사, 1억원 이하인 기업이 1천273개사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부…고소득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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