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풍속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한 '조선의 뒷골목 기행''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열녀의 탄생'등 흥미로운 저작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의 '성호, 세상을 논하다'를 읽었다. 조선후기 실학자 중 다산 정약용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을 읽으며 행간의 의미를 찾고 저자의 생각을 덧붙인다.
실학자의 사상은 훌륭했지만 당대에 결코 정책으로 옮겨지지 못했고, 오늘날에도 그들의 사상과 정책은 대부분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상은 늘 현실에 패배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상을 탐구한 옛 사상가의 책을 버리지 않고 읽는 것은, 언젠가는 현실이 개선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성호의 '나에게 만물이 갖추어져 있다'라는 글은 이렇다.
"맹자께서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하였다. 이것은 인(仁)의 본바탕이 지극히 큼을 형용한 말이다. … '나'란 존재는 물(物)의 상대다. 비록 저와 내가 서로 모습은 다르지만, 내가 저들을 나의 바깥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모두 껴안아 그것들에 대해 적절하게 처우하는 방도가 있다면, 곧 만물이 내 마음 안에 갖추어져 빠지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만물이 모두 나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세상 만물, 곧 수많은 백성, 오랑캐, 금수, 초목이 비록 나와 유(類)가 다르고 모습이 다르고 성질이 다를지언정, 모두 나와 구별되지 않는, 또 차별되지 않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말이다. 자신과 만물이 동등한 존재임을 생각하고, 그 마음을 다른 존재에 미루어나간다면 서(恕)와 인(仁)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그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명사상이 유가의, 그리고 성호 사상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성호는 통치자가 백성의 사정을 잘 모르는 것이 그들이 펼치는 정치의 가장 큰 오류라고 지적한다.
"겹이불을 덮고 수탄을 땔 때면 천하에 몸이 얼어붙는 사람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하고, 화려한 집에서 푸짐한 음식을 차릴 때에는 천하에 굶주림을 참는 자가 있는 줄을 알아야 하고, 일상생활이 안락할 때는 천하에 노역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하고, 만사가 내 뜻대로 되어 기분이 좋을 때면 천하에 원한을 품고 억울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백성을 제사 지내듯 부리라'에 나오는 글이다.
백성의 사정을 알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백성을 가까이 하라'에서 성호는 이렇게 말한다.
"백성을 어떻게 가까이 할 수 있을 것인가? 때때로 유예하여, 경우에 따라 적절한 방법으로 백성을 접하되 온화한 얼굴로 그들을 이끌고, 일을 구실로 삼아 백성을 찾아보되 마치 친구처럼 반갑게, 부자지간처럼 살갑게 한 뒤라야 아래에 있는 백성의 사정이 위에 전해질 것이고, 백성들의 질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신분제도는 자식이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도록 규정해놓았다. 양반 남성이 양민의 여성을 첩으로 취해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은 서자가 된다. 만약 천민 여성을 취해 자식을 낳으면 얼자가 된다. 아울러 '서얼'이다.
성호는 서얼은 '똥구덩이 속의 사람들'과 같다며 서얼차별을 통렬히 비판한다. 서얼 문제는 지금 이 시대의 문제는 아니지만, 저자는 현재 학벌의 정통성을 따지는 세태에서 적자와 서얼을 차별하는 세상을 절감한다. 대학입시란 것이 적자와 서얼을 가려내는 국가적 작업이라고 비꼰다.
'성호의 유토피아, 화폐 없는 세상'에서는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화폐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을 비판하며, 화폐 없는 세상을 주장한 성호의 사상이 결코 허황하지 않다고 말한다. 부자 감세와 노비제도, 유민을 양산하는 잘못된 정치에 대한 비판, 개혁의 어려움 등 여러 주제들이 쉽고 재미있게 소개된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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