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부러웠던 것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에는 거의 볼 수 없는 그들의 광장문화였다. 세계 각국의 인종들이 한자리에 모여 맘껏 웃고 떠들어도 조금도 답답하다거나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들의 여유로운 문화적 배경은 광장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더욱더 놀랍고 부러웠던 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도서관이었다.
넓지 않은 국토를 가진 우리나라, 그나마 남북으로 갈라진 조그마한 나라에서 온 작은 여자가 놀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운동화를 신고 맘껏 뛰놀고 싶은 여러 개의 광장과 쳐다만 보아도 웅장한 도서관을 만났을 때의 감격은 더욱더 컸다.
일찍이 우리나라도 고려시대의 찬란한 문화인 팔만대장경이 있고 정조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국립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규장각을 세웠다. 이처럼 선조들의 빛나는 문화유산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반 세기가 넘는 동안 우리가 문화적으로 이루어 놓은 것은 초라하기만 하다.
대구 최고의 번화가에 세워진 초고층 아파트 옆에 짓다 만 흉물스런 도서관이 있다. 몇 년 동안 아무런 진전도 없이 방치해 놓은 이유가 건설회사의 부도 때문이란 걸 신문에서 읽은 날 당국의 무책임함에 어이가 없었다. 대구시와 건설회사가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저런 흉물스런 모습으로 번화가에 남아있는 도서관을 보면 나는 자꾸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집 가까이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만큼 큰 행운이 또 있을까.
나는 처음 도서관이 거기에 지어진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너무 행복했었다. 도서관이 완공되면 나는 매일 저곳을 우리집처럼 드나들고 어린아이들에게 습관처럼 책을 읽도록 해야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200년이란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은 아마도 그들의 문화프로젝트에 있지 않았을까.
미국이 자랑하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기부를 시작으로 건립하게 된 수많은 도서관과 미술관들은 미국 중산층의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소로 발전해 왔다. 곳곳에 문화와 예술, 과학의 향기가 넘실거리는 유럽 복지국가들의 시민들은 주말이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자연사박물관 록과 클래식 콘서트에 가서 맘껏 즐긴다. 서민과 학생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저렴한 입장료가 그들을 문화의 향기에 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무지 그런 사치를 누릴 경제적 여유가 없다. 피카소전시회의 입장료가 서민의 하루 일당보다 더 많고 오페라와 클래식 연주회는 더욱더 어렵다. 한마디로 부유한 집 아이들과 상류층만이 문화와 예술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정치권에서 심심하면 들먹이는 복지정책을 들여다보면 정치적으로 생색나는 일에만 몰두해 있는 듯하다.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복지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문화와 예술, 과학과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나라다. 황 영 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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