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박사의 꿈은 날이 잘 드는 가위를 갖는 것이었다. 교수였던 남편 정일형 박사가 일제에 의해 수감됐다. 이 박사는 이불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날마다 가위질을 하다 보니 가위가 무디어져 애를 먹던 그녀는 "날이 잘 드는 가위만 있으면…" 하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정부 수립 후 남편은 국회의원과 1960년 외무장관을 맡아 외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아내에게 가위 선물을 빠뜨리지 않았다. 부부는 그 가위를 보며 '어려웠던 그때를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화여전(현재 이화여대)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으면서 결혼한 그녀는 4자녀를 둔 상태에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를 지원했지만 야당 국회의원이던 남편의 이력을 미워한 이승만 정권이 끝내 임용을 거부해 변호사 개업을 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남편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민주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재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군 검찰관이 증언을 제지하자 "자식들한테 부끄럽지 않소"라고 호통친 일화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1998년 오늘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최정암/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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