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갤러리에서] 신정주 작 '천지간 天地間 Ⅲ'

하늘과 땅 사이에 열린 수묵의 지평

▲ 캔버스에 먹, 2010
▲ 캔버스에 먹, 2010

높고 험한 산의 정상을 처음 오른 이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낸다. 그의 용기와 모험, 집념과 끈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조형 작업의 한 지평을 열고 넓히는 일 역시 아무도 오르지 않은 산의 정상을 밟은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삼십여 년 이상을 수묵으로 일관된 작업 속에서 다양한 모색과 실험을 계속해온 화가 신정주의 근작 중에 캔버스에 먹을 사용한 작품이 있다. 캔버스는 한지처럼 먹을 흡수할 리 없고, 그래서 필획은 점점으로 나누어지며, 더러는 면을 만들고 덩어리로 뭉치기도 하는데 이 모든 조화의 과정은 작가의 손을 떠남에서 이루어진다. 그 결과 천지간의 만상이 화면 안에 보여 지고 읽혀지기에 이른다.

하늘과 땅 사이에 만물이 있으니 '천지간'에 무엇이 담기지 못하겠는가? 산과 강, 바다, 들과 숲, 그 안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들, 그들이 빚고 세운 문명과 일체의 현실이 천지간에 자리 잡고 있기에 작품 앞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

작품 '천지간 Ⅲ'는 가로 27㎝, 세로 22㎝의 작은 화면이지만 그 안에 작가가 펼쳐 놓은 지평은 더없이 넓기만 하다. 작가가 오른 높이만큼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넓은 세계를 볼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보여주기가 아니라 먼저 자신이 더 보기 위해서 한 걸음 더 올라서기를 계속해 왔을 것이지만 그 혜택을 작품에서 함께 맛보고 누릴 수 있으니, 마치 작가의 등에 업혀서 높은 정상에 오름과도 같다. 하늘과 땅 사이에 새롭고도 다양한 지평을 펼쳐보이면서 우리를 갤러리로 초청하는 작가가 더없이 고마운 이유이다.

▶신정주 전 -그림이 시가 되다-, ~25일, 인터불고 갤러리 053)602-7311

오의석 <대구가톨릭대 교수, 스페인문화원 전시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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