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권력 이동

정조의 급사로 왕좌에 오른 순조는 겨우 열한 살의 나이였다. 권력은 어린 왕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한 정순왕후에게 돌아갔다. 당연히 왕은 허수아비가 됐다. 정순왕후와 노론벽파는 어린 순조가 감당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정권을 장악한 정순왕후와 노론벽파들은 정조에게 한이 많았다. 잔인한 숙청이 시작됐다. 견제할 힘이 없는 순조로선 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장용영이 혁파되고 아버지가 믿고 키운 수많은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도 어쩔 방법이 없었다. 권력의 진공상태가 불러온 참혹한 현장을 지켜볼 뿐이었다.

왕조 시대 왕의 갑작스런 죽음은 혼돈을 불러왔다. 앞선 권력에 가려져 있던 이들이 되살아나기도 했고 피를 뿌리는 복수극이 난무했다. 견제하고 조정하던 권력이 사라진 탓이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새로운 권력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빚어진 변화의 모습은 살벌했다. 곱게 왕위를 이은 경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 길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뭔가 다르게 해보고 싶은 마음은 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왕조 국가 북한의 후계를 놓고 세간에선 말들이 많다. 우리 정부를 비롯해 중국이나 미국 등 주변국의 입장에선 후계자 김정은의 체제가 빨리 안정되기를 바란다. 급작스런 변화가 가져올 위험보다 안정을 원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제 겨우 스물아홉 살의 애송이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는 지도자로선 치명적인 약점이다.

미국과 중국은 김정은 체제의 안정으로 한반도 불확실성이 제거되길 기대한다.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전환을 원한다'는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말에는 미국의 의중이 담겨 있다.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김정일 사망 사실이 알려진 다음 날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했다. 북한 권력의 안정을 원한다는 제스처다,

권력의 속성은 변화를 동반한다. 스물아홉의 아이는 그와 맞설 만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일러준다. 김정은을 앞세워 기존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와 권력을 장악하려는 이들의 한판 대결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 권력층의 합종연횡을 예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권력 이동이 어떻게 진행되든 중요한 대목은 불똥이 우리에게 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싸움에 애꿎게 당하지 않으려면 섣부른 참견보다는 눈과 귀를 열고 지켜볼 일이다.

서영관 논설주간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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