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이제껏 없던 현상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은 그동안 애써 눈을 감고 있던 우리 사회에 눈을 번쩍 띄게 하는 경종을 울렸다. 각 기관마다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형사처벌 대상 연령을 낮추고, 스쿨 폴리스 제도를 확대하며, 학교폭력 핫라인을 개설한다는 등 온통 난리다. 학교폭력 문제는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가르치는 우리 교육환경에서 필연적으로 잉태된 괴물이고, 근본적 해법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름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이 같은 대책과 주장들이 우리 사회의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학교폭력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그저 아이들을 가해자와 피해자 둘로 양단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수준의 해결책은 미봉책 이상이 될 수 없다.
제1 저자인 마이클 톰슨 박사는 10여 년간 '아이들의 잔인성'을 주제로 수많은 워크숍과 세미나를 이끌어 온 결과물로 이 책을 구상했고, 또 다른 두 명의 연구자들이 2년의 집필 기간 동안 다시 80여 명을 인터뷰하면서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엮어냈다.
학교폭력의 주체는 몇몇 개인이 아닌 '또래집단'이다. 그런데 또래집단이라는 것은 외연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실체가 아니고 아이들의 '관계의 집합체'인 만큼 유동적이고 무의식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부모는 물론, 가해자인 당사자 아이들도, 교사들도, 그 누구도 사건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하기 어렵다. 가해자 아이들은 "그냥 장난이었어요"할 뿐이다. 따라서 학교폭력은 개인의 심성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이해되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선천적으로 혼자 있기를 즐기는 아이가 아니라면, 모든 아이들은 또래집단에 들어가기를 열망한다. 그 또래집단은 인기 있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추종하거나 부러워하는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공간 내에서 '또래문화'를 주도한다. 또한 또래집단은 모든 아이들을 '안'과 '밖'으로 나눈다. 집단에 받아들여진 아이들과 거부된 아이들. 받아들여진 아이들 내에서도 서열을 나눈다.
그렇다면 '안'과 '밖', '위''아래', 각자의 역할…. 이 모든 것을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리더 한 명이나, 인기 있는 몇몇이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수천, 수만 건의 작은 사건들, 수천, 수만 번 오가는 대화들, 서로 교환하는 친근한 눈빛, 부러운 표정, 두려운 떨림…. 집단의 모든 결정은 눈에 보이지 않고 결코 기억되지 못하는 이런 움직임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잔인성', 즉 아이들의 도를 넘는 잔인한 행동은 여기에서 나온다. 집단에 인정받고 싶은 욕망,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혼자 있다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무모해지고 판단력이 마비되는 것이다.
또래집단의 생리를 이해해야만, 학교폭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는 아이들의 '나쁜 관계'를 끊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안정된 균형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모 역시 아이 뒤에 있는 집단의 힘을 통찰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468쪽, 1만5천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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