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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달의 문화 톺아보기] 시대의 좌표를 제시한 '문형(文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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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당대 최고의 문장(文章)이 맡았기에 육경(六卿), 삼공(三公) 부럽지 않은 명예로운 자리가 '대제학'이었다. 나라의 학문을 바르게 평가하는 저울이라는 뜻의 '문형'(文衡'조선시대 홍문관과 예문관, 세종 때 집현전의 대제학을 일컬음)으로 불린 만큼 권위 또한 대단했다.

임금도 인사에 관여할 수가 없었기에 문형이 되려면 대제학의 추천이 있어야만 권점(이름 아래 찍는 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받았다. 물러나는 것도 스스로 사임하지 않은 한 종신직이 보장되었다.

이렇듯 철저한 독립적 권위를 존중받았기에 대제학을 바라보는 조야(朝野)의 시선은 엄격 그 자체였다.

1556년에 사암 박순이 대제학을 제수 받고도 물러난 것은 이러한 엄격함을 스스로에게 적용한 결과였다. 사림으로부터 학문적 스승으로 추앙받던 퇴계 이황을 제치고 문형에 오르자 스스로 그 자리를 퇴계에게 양보했다. 학문적 깊이에서 퇴계와 비길 바가 못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를 받아들인 퇴계 또한 그 마음을 가상히 여겨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대제학을 물려줬다.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났기에 사암은 실리와 명분을 모두 얻는 역사적 인물이 될 수가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더러 미덥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대제학이었던 서거정은 누가 봐도 자신의 후임으로 적격인 김종직이 있었으나 끝까지 그에게 대제학 자리를 물려주지 않았다. 훈구의 학문권력이 사림세력의 핵심인 김종직으로 넘어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거정은 조카에게조차 문형을 너무 오래 한다는 세간의 비난을 전해 들어야 했다.

굳이 현대판 문형을 꼽으라면 필자가 보기에 한국국학진흥원장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짧은 기간에 이룬 한국국학진흥원의 눈부신 학문적 업적이며, 시대의 좌표를 제시하는 원장의 몸가짐도 이 같은 위상을 부여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국학진흥원장이 이 시대의 진정한 문형으로서 명분 있는 지속성을 이어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주기를 고대해 본다.

(안동시 역사기록관'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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