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미 음식은 귀하고 맛있는 음식이다. 옛 어른들은 진미 음식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전설 속에 나오는 구할 수 없는 용의 간과 봉의 골수, 표범 탯줄과 기린 육포를 들었다. 둘째는 성성이 입술, 오소리 구이, 코끼리 코, 낙타의 등으로 세상에 있지만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이다. 셋째는 남방의 굴, 북방의 곰 발바닥, 서역의 말젖, 동해의 전복이다.
전복은 바다의 보석이다. 중국 송나라의 소동파는 전복을 주제로 한 '복어행'(鰒魚行)이란 시를 남겼다. 또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도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동서남해에 두루 전복이 있지만 울산, 동래, 호남, 제주에서 잡히는 전복이 껍데기가 크고 육질이 좋다"며 최고의 진품이라고 격찬했다.
예부터 전복을 진미 음식으로 여겼다. 찾는 이들은 많았으나 물량은 항상 모자랐다. 요즘 흑산도 근해에서 잡히는 홍어는 전량 서울의 전라도 출신 정치인과 돈 좀 번 기업인들이 중매인들에게 선금을 질러놓고 가져가는 통에 지방의 미식가들은 칠레산 수입 홍어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전복을 따는 해녀들은 관리들의 횡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초 이학규라는 문인이 쓴 '낙하생집'(洛下生集) 속에 있는 '전복 따는 해녀'라는 시에는 전복 수탈 현장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관리가 달려와 성화를 하는데/ 신선하고 살찐 전복 회로 뜬다며/ 급하게 관아 주방으로 가져가고/ 황금빛 나는 전복은 꼬치에 꿰어/ 서울 벼슬아치에게 올려 보내니/ 무더기로 쌓인 굴 껍질만/ 해녀의 빈 그릇을 채울 뿐."
흑산도에서 귀양살이 한 다산의 친형 정약전은 그가 쓴 자산어보에 전복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전복은 맛이 달아서 날로 먹어도 좋고 익혀 먹어도 좋다.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쪄서 말린 포를 먹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장은 익히거나 젓갈을 담아 먹으면 좋은데 봄여름에는 독이 있어 잘못 접촉하면 종기가 나고 배탈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했다.
나의 음식여행 가방 속에는 버너, 코펠. 칼, 가위, 도마 등 별별 것이 다 들어 있지만 전복의 물때를 씻어내는 솔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의 운동화를 씻을 때 곧잘 사용하는 빳빳한 플라스틱 솔이다. 이것이 있어야 전복 손질을 쉽게 할 수 있다. 여름 바캉스 시즌으로 접어들면 어시장마다 회 거리 생선이 귀해지고 낙지와 소라도 값이 다락 같이 오른다. 이럴 땐 전복 전문가게에서 일정과 인원에 맞춰 적정량을 구입하여 그걸 둘러메고 떠나면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섬이나 외진 바닷가의 생선 값은 어시장보다 월등 비싸다는 걸 알아야 한다.
지난해 겨울, 열차를 타고 묵호와 주문진을 거쳐 강릉에서 대구로 내려올 때였다. 강릉에서 대구까지는 6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강릉 중앙시장에서 전복 1㎏을 샀다. 진물이 나는 전복을 날것으로 먹기가 어려워 삶을 장소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강릉역 화장실의 세수간에서 물때 솔질을 끝내고 역사 옆 공터에서 버너를 피워 전복을 삶았다. 화장실을 드나드는 행인들이 쳐다봤지만 도반들과 함께 저지르는 '아름다운 작업'은 너무 재미있었다.
나의 여행 도반들은 대부분 스쿠버 다이버들이다. 물질과 칼질에 익숙한 그들은 여행 마니아들로 부끄럼을 타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시골길을 달리다 정자를 만나면 그곳을 생선회 뜨는 주방으로 이용하고 역이나 버스터미널의 바깥 의자에서 라면을 끓이는 것을 예삿일로 생각한다. 내 스스로도 여행은 이렇게 해야 진짜 묘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몇 년 전 일이다. 동해의 호랑이 꼬리 쪽 바닷가에 전복을 따러 간 적이 있다. 전복이 서식할 만한 '짬'(물속 바위 섬)은 그 지역 어촌계 소유였다. 마침 연줄을 타고 들어가 '먹을 만치'만 잡도록 허락을 얻었다. 그날 늦게 도착한 친구가 어물어물 하더니 냉장고에 넣어둔 오전 작업 분 전복을 꺼내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요즘도 줄행랑 도반과 바다에 간다. 눈앞에 전복이 보이면 '갖고 튀어'라는 눈짓을 보내면 씨익 웃고 만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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