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의 총칼 앞에 점령당했지만 지금은 독일의 돈에 포위돼 국가 주권을 잃고 있습니다.'
'독일을 원망하지 않아요. 그리스를 독일 돈 앞에 무릎 꿇게 만든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그리스)의 여'야 정치인들이기 때문이지요.'
지난주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안이 통과되던 날 치욕과 절망 속에 눈물을 흘린 그리스 국민들의 통한에 찬 목소리다.
그리스, 기원전 아크로폴리스 민주광장에 모여 조개껍데기에 시민투표를 실시했던 민주 시민 정치의 발상지- 그 모범적인 민주국가가 거꾸로 방종에 빠진 탈선 민주주의에 의해 몰락하고 있다. 왜 그들은 찬란한 문화유산의 상속 자원을 지니고도 외세에 굴복한 지 60여 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중요한 알짜 국가 재산을 외국에 압류당하는 굴욕을 당해야 했는가. 바로 정신의 몰락이다. 자신과 가족보다 나라를 더 소중히 지킨다는 구국 정신이 퇴락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치스의 총칼 앞에 투쟁할 당시의 그리스에는 그나마 레지스탕스라는 구국 정신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그리스의 잔 다르크로 불리는 여성 레지스탕스 대원의 투쟁을 다룬 영화 '나타샤'는 그리스의 구국정신을 그렸다. 독일 게슈타포의 온갖 고문에도 조직 기밀을 실토하지 않자 그녀의 어린 자식을 고문실에 데려와 고문을 시작했지만 그녀는 그 아이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며 고문하든 말든 나는 모른다고 끝까지 저항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식을 부정한 비정한 어머니. 그러나 그 비정할 만큼 냉철한 의지와 혀를 깨무는 인내의 희생이 자식과 독립조직 두 가지를 다 살려낸다. 그러한 레지스탕스 구국 정신의 뿌리는 아테네 시민 정신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그게 어쩌다 60여 년 만에 정신이 썩어 나라의 기둥뿌리가 뽑히는 지경으로 무너져 내렸는가. 나라 장래는 뒷전이고 너나없이 펑펑 퍼 주고 퍼 썼기 때문이다.
똑같이 식민지 독립 후 60여 년이 지난 우리 처지를 비춰보면 '포퓰리즘의 끝은 국가 주권의 상실이더라'는 그리스인들의 때늦은 자탄과 한숨이 결코 남의 집 넋두리가 아니다. 당장 총선을 코앞에 두고 쏟아내는 한국 여'야 정당의 선심 공약들을 보라. 나라 부채가 급팽창하는데도 연금을 늘리고 의료 복지를 확대시켜왔던 그리스 포퓰리즘을 오히려 능가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5+5 공약, 민주통합당의 3+3 공약 등 그럴듯한 선전 구호로 치장된 공약들의 속내를 보면 그야말로 선거 개표만 끝나면 십중팔구 허공 속에 공중 분해될 공약(空約)들이다. 당장 나라 살림살이를 챙겨 알고 있는 정부 쪽부터 '말도 안 되는 포퓰리즘 공약'이라고 반격했다. 국민들을 속이지 말라는 경고다. 민주당의 무상 의료에만 83조 원에, 사병 월급 인상 1조 600억 원, 반값 등록금 2조 원 등 조 단위의 공약만도 셀 수 없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어차피 수십조 공짜 돈 잔치를 벌일 판이면 대학 등록금도 2조 원만 더 갖다 붙이면 전액 무상교육이 되는데 절반만 생색 내는 공약은 또 무슨 맹꽁이 꼼수인가. 더구나 다음 정부가 집권 5년간 복지 공약을 약속대로 다 지키려면 340조 원이 추가 투입돼야 한다고 했다.
340조, 중국'일본 손발 묶어놓고 우리만 수출 계속 늘어나고 동해바다에서 석유라도 펑! 하고 터져 나오면 그 정도 돈쯤 껌값이 될 수도 있긴 하다. 정치권과 국민이 몽유병 환자처럼 그런 헛꿈에 빠져 조삼모사 같은 공짜 도토리를 먹고 싶다면 340조 빚더미를 향해 흥청망청 떠내려가자. 누가 공짜 복지를 반대하고 마다할 것인가. 정말 복지가 필요한 빈곤층은 불행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다소의 빚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극빈 소외 계층은 보듬어 줘야 옳다. 다만 누가 봐도 아니다 싶은 망국적 포퓰리즘은 내걸지 말라는 거다.
60여 년 전, 거의 모든 국민이 무상 복지 대상일 만큼 힘들었던 시절엔 그래도 돈은 없어도 허리띠 조르는 헝그리(Hungry) 정신은 지녔었다. 그 정신으로 340조를 벌 수 있는 국력이 쌓일 때까지는 '최소 복지'와 근검의 길을 가야 지금의 번영이나마 지키고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정당들이 내걸어야 할 공약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구국과 인내, 근검 정신의 재무장이어야 한다. 독일의 돈 앞에 꿇은 그리스처럼 중국과 일본의 총칼 앞에 꿇었었던 우리가 다시 그들의 돈 앞에 꿇는 날이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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