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古宅은 살아있다] <9> 예천 금당실마을

조선 500년 이어온 반촌의 상징, 국내 최고의 명당

오미봉에서 남쪽으로 바라 본 금당실 마을. 멀리 해발 200m 내외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금곡천이 오른쪽에서 마을을 감싸고 휘도는 국내 최고의 명당중 하나로 꼽힌다. 마을 오른쪽을 감싼 송림은 북서풍을 막기 위해 비보림으로 조성한 것이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오미봉에서 남쪽으로 바라 본 금당실 마을. 멀리 해발 200m 내외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금곡천이 오른쪽에서 마을을 감싸고 휘도는 국내 최고의 명당중 하나로 꼽힌다. 마을 오른쪽을 감싼 송림은 북서풍을 막기 위해 비보림으로 조성한 것이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금당실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돌담. 총 길이가 7.4km에 이르러 이곳을 걸으면 마치 조선시대로 온 느낌이 절로 든다.
금당실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돌담. 총 길이가 7.4km에 이르러 이곳을 걸으면 마치 조선시대로 온 느낌이 절로 든다.
금당실마을을 감싸고 있는 송림.
금당실마을을 감싸고 있는 송림. '금당실 쑤'라고 부르는 이 숲은 길이가 2km에 달했으나 현재는 800m 정도 남아 있다.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 마을은 우리나라 최고 명당으로 손꼽힌다. 마을 뒤쪽에는 오미봉(五美峰)을 비롯한 해발 200m 정도의 산들이 이어지고, 앞쪽으로는 금곡천(金谷川)이 휘감고 흘러 옛부터 십승지로 유명하다.

또 이 마을은 조선시대의 선비 정신을 지켜온 반가(班家)로도 유명한데 감천문씨 문호검(文孝儉)이 15세기 초에 금당실 일대를 개척한 이래 함양박씨, 원주변씨 등이 500년을 이어왔다.

마을 안에는 함양 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 함양박씨 입향조 박종린을 숭모해 재향을 올리는 추원재, 원주 변씨 변응녕을 기리는 사괴당 고택,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고택터, 조선 숙종 때 도승지 김빈을 추모하는 반송재 고택 등 고가옥 12채가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이밖에 7.4km의 흙 돌담길과 800m의 소나무 숲(송림'천연기념물 제469호)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금당실마을 입향조, 함양박씨'원주변씨

예천에서 928번 지방도로를 따라 용문사 방면으로 10여분 가다보면 금당실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 전통마을은 용문면사무소 일대에서 시작되는데 마을 전체가 돌담길로 이어져 있다.

금당실마을은 감천문씨 문억향의 맏사위인 함양박씨 박종린(朴從鱗'1496~1553)과 둘째 사위 원주변씨 변응녕(邊應寧'1518~1586)의 후손이 대대로 마을을 일궜다.

박종린은 퇴계 아버지인 이식의 처외사촌이며, 외조가 보백당 김계행 선생이다. 이후 금당실의 함양박씨들은 대과 급제자 11명을 배출해 명문으로서 지위를 굳히게 된다.

박종린은 홍문관 교리(1536년)로 세자에게 글을 가르쳤고, 중종 임금의 정치 자문 역할을 했으나 권세가 김안로의 횡포가 심해 용문면 상금곡리로 낙향, 후진 양성에 여생을 보냈다.

박종린은 다섯 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해 향오린(鄕五鱗'형제 5명이 모두 문과에 등과)이라고 불렸으며 이 때문에 아버지 박눌(朴訥)이 병조참판에 추증(1533년)되기도 했다.

금당실 마을에는 함양박씨 입향조 박종린을 숭모해 재향 올리는 금곡동 추원재(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2호) 및 사당이 있다.

담장 안에 사당과 내삼문'추원재(강당)'대문간 등 4동이 동일 축선상에 배치되고, 담장의 오른쪽에는 영사정이 별도로 자리잡고 있다. 추원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막돌(자연석)기단을 쌓고 막돌초석을 뒀으며 앞면에는 둥근기둥을, 나머지에는 네모기둥을 세웠다.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오량가(다섯 개의 나무기둥으로 지붕 틀을 짠) 구조의 집이다.

사당은 정면 3칸'측면 1칸 반 규모로 장대석기단을 쌓고 그 위에 막돌초석을 둔 오량가 맞배지붕집이다. 집 기둥 상부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장식했으며, 그 짜임과 양식이 매우 뛰어나다.

금당실마을 동촌에는 변응녕이 터를 잡은 후 18세기 후반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사괴당 종택(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37호)이 자리하고 있다.

사괴당 종택은 토석담장이 둘러진 대지의 북쪽에 안채가 자리 잡았고, 그 앞으로는 마당이 매우 넓은 'ㄴ 자형' 사랑채가 있다.

마당 동쪽 경계에는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대문이 있는 집이 한채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팔작집으로 막돌기단 위에 놓여 있다. 사당은 없으며, 상주에 살고 있는 종손 변경구 옹이 4대 조상의 지방 제사를 모시고 잇다.

이재완 예천군 학예연구사는 "금당실은 사람이 잘 살 수 있었던 복된 땅이자, 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명문가의 세거지로서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향후 예천지역 인물들을 주제로 심도있는 연구가 진행된다면, 인물과 연계된 관광지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마을에는 함양 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 조선 숙종 때 도승지 김빈을 추모하는 반송재 고택,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고택터 등이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함양 박씨 3인을 모시는 금곡서원

금당실마을 북촌에 자리한 금곡서원은 함양 박씨 3인을 모시는 곳으로 1656년에 함양에 건립된 것을 후손들이 1984년 이곳에 세웠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훼철됐다가 유림에 의해 복원됐다.

서원 내의 사당 숭덕사에는 8세 함양부원군 박충좌(朴忠佐), 15세 눌(訥), 24세 손경(孫慶) 등을 배향한다.

건물로는 3칸의 묘우, 8칸의 강당, 3칸의 동재'서재, 2칸의 전사청, 장판각, 신문, 외문과 6칸의 주소(관리인이 거주하는 방) 등이 있다. 박눌의 좌우에는 박충좌·박손경이 배향돼 있다.

동재'서재는 유생들이 공부하는 장소이며, 전사청은 향례 때 제수를 마련해 두는 곳이고, 장판각은 문집의 판각을 보관해 두는 곳이다. 주소에는 관리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매년 3월 중정(中丁)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물로는 몇 권의 문집이 있다.

▷영남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사대부 주택, 반송재고택

반송재 고택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62호로 금당실 동촌에 있다. 집 주인은 숙종조 도승지를 거쳐 예조참판을 역임한 갈천 김빈(金賓'1621~1694) 선생이다. 그는 4조 참판을 역임한 청렴 강직한 관료였다.

담장 안에 있는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3.5칸 팔작집이다. 사랑채는 정면 5.5칸, 측면 3.5칸 팔작지붕으로 중앙 2칸의 대청은 전면에 사분합문(문짝이 넷으로 된 문)을 달아 마루방으로 꾸몄으며, 곳간채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특히 사랑채 앞에 담장과 연결된 대문채가 있는데 영남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배치를 보여 준다.

현재의 반송재 고택 주인은 서울에 사는 운촌(耘村) 김철훈(金徹勳) 선생으로 한학에 조예가 깊고 성균관 감사를 역임했다.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고택터

반송재 고택 뒷편으로는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고택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소실돼 터만 남아 있다.

이유인의 본관은 경주이고 호는 희재(希齋)이다. 김해 중인출신으로 정2품 법부대신에 오른 구한말 이용익과 함께 풍운아로 회자된다.

뚜렷한 지지기반이나 가문, 그리고 출세를 뒷받침 할만한 재력도 없었지만 구한말 왕족과 양반계층이 득세하던 시대 속에서 당대 실력자 고종과 민비를 주무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예천 지역에서는 이유인을 양주대감이라 불렀다.

세월이 흘러 양주의 후손들은 이 곳을 떠나고 99칸의 저택은 뜯기어 남의 집 재목으로 혹은 어느 가문 정자 목재로 사용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박희식 문화해설사는 "이유인은 1899년쯤 이곳에 99칸 사저를 지었는데. 용문면민은 물론이고 인근 문경의 동로면 주민까지 노역에 동원됐고, 농사에 종사하지도 못한 채 권세가의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은 집을 지으면서 기둥을 거꾸로 세우는 방법으로 원성을 표출했다"고 말했다

◆천연기념물 금당실 '쑤' 등 인근 볼거리 많아

금곡서원 앞으로 수백년 된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금당실마을의 명물 중 하나인 송림(천연기념물 제469호)이다. 주민들이 '금당실 쑤'라고 부르는 이 숲은 원래 길이가 2km에 달했으나, 현재는 800m 정도가 남아 있는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금당실마을 박길상 이장은 "1892년 마을주민들이 뒷산 오미봉에서 금을 잠채하던 러시아 광산회사 광부 두 명을 살해했고, 조선과 러시아의 외교문제로 비화되자 마을주민들은 당시 친러파인 양주대감 이유인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하고 배상금과 잡혀간 주민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금당실 소나무 숲을 베어 충당했다"고 했다.

이후 마을주민들은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사산송계를 결성했으며, 지금까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동산으로 한여름 들일에 지친 농부들의 땀을 식히는 곳으로 마을 주민과 함께 해오고 있다.

이밖에 마을에는 구곡가, 덕용재, 우천채, 천곡재, 광서당, 오미서소 등 100년 이상된 고택들이 7.4km 돌담길을 따라 들어서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온 느낌이 절로 든다.

마을에서 5km만 더 올라가면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두운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인 용문사가 있다. 용문사에는 국보급인 대장전도 대단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유일하게 경전을 넣어두는 회전식 장경각인 윤장대 2좌가 있다. 이 윤장대를 돌리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초간일기'를 보관하고 있는 예천권씨종택과 초간 권문해 선생이 건립한 초간정, 병암정, 야옹정, 미산고택, 연곡고택, 춘우재고택 등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예천곤충생태체험관과 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특히 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에서는 천문관측은 물론 가변중력체험, 우주자세제어체험, 달중력체험 등 다양한 우주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 이중 스페이스타워 전망대에서 체험하는 우주유형체험이 단연 인기다.

예천군 박중식 문화관광과장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금당실마을은 영화의 배경으로도 많이 등장하는데 '나의 결혼 원정기', '영어 완전 정복', '황진이' 등이 이곳에서 촬영했다"며 "최근 일본'중국인 관광객들이 한류열풍을 타고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숙박 및 먹거리

금당실마을 숙박 및 체험은 금당실정보화마을(054-654-2222)로 문의하면 된다. 또 마을입구 장터에는 두부요리 전문점인 안동식당(054-655-8752)과 한방오리 전문인 궁중(054-655-0696) 등이 있다. 예천읍내에는 복어전문 한국관(054-654-3369)과 청포묵 원조 전국을 달리는 청포집(054-655-0264), 육회전문인 백수식당(054-652-7777) 등이 유명하다.

예천·권오석기자 stone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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