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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의 시와 함께]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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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재래시장을 가보면

재밌는 풍경,

어김없이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 쓴 할머니들이 있다

어김없이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 신은 아줌마들이 있다

재밌다, 어떤 도구가

전혀 아무 상관도 없는 어떤 곳에 쓰일 때의 즐거움 즐거움

학교에도 경찰서에도 우체국에도 그게 없는데 시장에는 그게 있다

단 한 평 가게도 없는

비닐봉지여

머리가 시리고 발가락이 시려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 쓴 노점이여

아무나 비닐봉지를 뒤집어쓰지 않고 아무나 비닐봉지를 뒤집어 신지 않는다

초겨울 새벽

재래시장에 가 보면

임기응변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만이 그런다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 쓴 할머니가 호객을 한다

과일을 담아주고

채소를 담아줄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손님을 청한다

  유홍준

삶의 사소한 부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유홍준 시인의 시입니다. 이번에 시인은 재래시장의 할머니, 아줌마들을 보고 있네요.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거나 발에 신은 이분들의 모습은 한편으론 우스꽝스럽고 한편으론 측은해 보입니다.

삶의 어려움은 늘 어떤 도구를 제 기능 이상으로 쓰게 만들지요. 그래서 가난하다는 것은 물건의 여러 용도를 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안정된 삶을 누리는 이들이 기능이 따로 있는 여러 도구를 쓸 때,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의 사물을 임기응변으로 활용하지요. 비닐봉지가 모자나 양말 역할까지 떠맡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재래시장의 이분들이 모든 가족의 가난한 사연을 혼자 떠맡아 좌판으로 나온 것처럼요.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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