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 通]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大 경제학과 교수

비주류엔 귀막는 세태, 듣게 하려니 '독한 말' 쇼킹화법

이달 21일 경북대 강연을 위해 대구를 찾은 장하준 교수는 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강의실은 북새통을 이뤘고 사인공세도 이어졌다. 정운철기자 woon@mnset.co.kr
이달 21일 경북대 강연을 위해 대구를 찾은 장하준 교수는 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강의실은 북새통을 이뤘고 사인공세도 이어졌다. 정운철기자 woon@mnset.co.kr
장하준 교수는 유럽식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조세정의 확보와 어떤 (복지)정책을 시행할 것인가 하는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하지만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못할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장하준 교수는 유럽식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조세정의 확보와 어떤 (복지)정책을 시행할 것인가 하는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하지만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못할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혼란의 시대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사회의 활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은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분석과 새로운 대안 제시를 갈망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장하준(48)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 피플'이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더라도 경제를 이끌어갈 대안은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달 21일 경북대 강연을 위해 대구를 찾은 장 교수를 만났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특강을 한 그의 인기는 스타 연예인을 방불케 했다. 300석의 강의실 좌석이 부족해 복도까지 빼곡하게 들어찼다. 강연이 끝나자 사인을 받으려는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대중 속으로 뛰어든 학자

-'학자'라고 하면 까다롭고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전혀 다르다. 사인을 해달라며 몰려드는 학생들에게 스스럼없이 웃으며 대하는 모습을 보면 약간 '끼'를 타고 난 듯한 느낌도 든다.

▶타고난 성격이 활달한 편이다. 어릴 때는 소위 '나대는 걸 좋아한다'(웃음)평도 많이 들었다. 강의시간에 조크도 많이 한다. 한 10여 년 된 일인데 영국에서 한 학생이 강의평가서에 '이 교수는 코미디언 하는 게 낫겠다'고 써놓기도 했다. 게다가 대중 서적을 쓴다는 것은 독자들과의 만남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리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진짜 사람 속으로 녹아 들어가 정치를 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영국에서 산 세월이 21년이다. 한국을 떠나서 장시간 살게 되면 한국이라는 사회에 대해 관심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정작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보다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고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태어난 나라에 대한 애착이 깔려있다. 좀 특수한 것은 처음에 유학을 갈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었고 초창기부터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기적이 계속적인 연구주제였다. 한국은 세계 경제 발전사로 봐서 굉장히 의미 있는 나라다. 바닥에서 시작해 고속 성장해왔고, 변화 속도도 빠르다. 그런 학문적 연구 과제로 재미가 있다 보니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저술 활동과 더불어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사회를 향한 발언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유는 뭔가?

▶모든 연구자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런 방식을 통해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알리는 게 중요한 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경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 주류적인 이야기는 만연해 있지만 비주류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비주류적 연구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대중적 전파 방식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논란의 중심에 선 문제적 인물?

-장 교수를 이야기할 때 언론에서 공통적으로 거론된 단어가 '논쟁적 학자', '보수와 진보에서 다 비판받는 학자'라는 수식어다.

▶나도 남을 비판하니까 남이 나를 비판하는 데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가끔은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두 마디 말만 잘라서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저널을 통해 "자유시장이 최고가 아니다.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반대론자들은 "그렇다면 사회주의 계획경제 하자는 거냐"며 반격을 해 맥이 풀렸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싸움을 거는 입장이 많으니까.

-교수님의 어법이 좀 강한 편이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의 서두에 쓴 "자유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많은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지 않았느냐?

▶비판하는 사람들이 '수사법'을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 같다. "자유시장은 없다"고 말을 한데 대해 "그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왜 비판하냐"고 말하는데 그 표현의 이면에는 "시장이라는 게 그렇게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고 정치나 사회문화 등에 의해 규정되는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사법과 결론을 혼동을 해서 비판을 가한다. 이렇게 강한 수사법을 쓰게 된데는 한쪽으로 논의가 너무 가 있다 보니까 미지근하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조차 않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표현으로 쇼크를 줘야 (내 이야기를) 쳐다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더라.

- 괜찮은 집안의 수재, 소위 '엄친아'로 불릴법한 스펙을 갖고 있다. 기존의 논리에 순응할 법 한데 어쩌다 '반신자유주의 전도사'를 자처하게 됐나?

▶굳이 집안 이야기를 하자면 독립운동 하신 분들도 있고, '대세를 따르는 것이 옳은 게 아니다'라는 집안 분위기가 있다. 그런 영향이 좀 있었을 거다. 그리고 학자가 공부를 하다 보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사실 1980년대 학번이다 보니 그때는 박정희 정권과 재벌이 나쁘고, 수출을 많이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영국엘 가서 경제발전 이론을 공부하고 선진국 사례와 역사 등을 연구하다 보니 잘한 점도 있더라. 그리고 사상이라는 것이 상대적이다. 대학 다닐 때는 운동권 친구들이 공부만 하고 노동운동 안 한다고 나를 욕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친구들이 오른쪽으로 가 있고 마치 내가 82학번 좌파의 대표같이 됐다. 세상이 바뀐거다. 나는 옛날에 비해 오른쪽으로 5㎝ 움직인 거 같은데 다른 친구들이 5m를 가버리다 보니 오히려 내가 좌파로 불리는 거 아니냐?

◆갈 길 멀어도 큰 목표는 복지국가여야

-교수님은 유럽식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복지제도 확대를 위해서는 세수 확대가 필요한데 여기에는 선행과제로 누구나 꼼수 없이 세금을 납부한다는 전제가 확립돼야 하는 것 아닌가?

▶중요한 문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 변호사 등 고급 전문직부터 자영업자들의 세금 탈루가 심각하다. 그 점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핀란드나 스웨덴 등의 경우 우리나라로 치면 국세청 홈페이지 같은 곳에 접속하면 특정인의 이름을 검색하면 얼마를 벌어서 얼마만큼의 세금을 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다.

-정책적 합의 과정도 중요할 것 같다. 내가 낸 세금이 허투루 낭비되는 게 아니라 올바른데 쓰여서 내 삶의 질을 높여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저항 없이 세금을 납부할 수 있지 않겠느냐?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지금껏 세금을 낭비적으로 쓴 것도 많은데다, 정치가 완전히 발전되지 않다 보니 잘못된 정책을 행해도 컨트롤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복지 제도를 강화하는 이면에는 이런 부분에 있어 사회적 합의를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국민들의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그에 대해 국민들이 피드백을 주는 것을 쉽게 하고, 일단 결정이 되면 일정 부분의 반발이 있더라도 국민들이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산적한 문제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할 것은 아니다. 스웨덴도 1932년까지는 소득세조차 없었던 나라다. 그런 나라가 30년이 걸려서 복지제도를 만들었다.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큰 사업이고 중요한 결정이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계획을 세운다면 못 이룰 것도 아니다. 우리 국민은 이미 (경제 성장이라는 큰 과제를) 한 번 이뤘지 않은가.

-10년 후 한국 경제에 대한 최상, 최악의 가상 시나리오를 구상해 본다면?

▶베스트 시나리오로 갈 일이 없을 것 같다. 현재 미국, EU 등의 선진국들과 FTA를 체결한 상태에서 신산업을 키우기가 힘들거다. 국민소득 2만달러인 우리나라가 미국, 스웨덴 등 국민소득 5만달러 수준의 국가들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갈 길이 먼데 FTA 때문에 힘들게 됐다.

더구나 한국은 갈수록 사회갈등이 커질거다. 외환위기 이후 양산된 자영업자들이 버티다 버티다 빈사지경에 놓인 가운데 철없는 재벌들마저 서민들의 자영업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여기에다 FTA가 본격화되면서 도태되는 산업 부분이 생길건 데 우리나라는 복지나 재교육 이런 게 안돼 있으니까 다시 자영업자가 늘어날 거고, 젊은이들은 일자리 얻기가 한층 힘들어질거다. 현재는 (이런 어두운 현실들이) 자살률 1위로 표출이 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건가, 자꾸 어두운 시나리오만 써진다.

-정의가 시대의 화두다. '경제 정의'(fairness)를 정의해보라면 어떻게 말하겠는가?

▶정의라는 것은 워낙 개념이 다양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내리긴 힘들겠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인의 성취는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워런 버핏이 20년 전쯤 인터뷰에서 "내가 번 돈의 대부분이 미국 사회가 내게 벌어준 거다. 내가 만약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다면 농사나 짓고 살았을 거다. 우연히 내가 투자에 재주가 있었고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사회가 대부분의 돈을 나한테 벌어준 것이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이 모든 것을 사회적인 배경 탓으로 돌린다면 이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왜 환경을 어느 정도 극복을 못 하는가. 하지만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하는 것도 기만이다.

성공도 실패도 같이 사는 사회에서 서로 도와가면서 공동의 창조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성과를 나누는 방법을 수학 공식처럼 딱딱 자를 수는 없지만 이게 다 내가 혼자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nset.co.kr

※장하준 교수는?

1963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갔다. 1986년 케임브리지대 석사과정에 지원했지만 받아주질 않아 수료증만 주는 디플로마(Diploma) 과정에 들어간 뒤 실력을 인정받고 1년 만에 석사, 3년 만인 1992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90년 박사 학위를 받기 전부터 교수로 임명돼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2003년 뮈르달상을 받았으며, 2005년 레온티예프상을 최연소로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5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로가 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비롯해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이 있으며, 최근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책을 공동 저술하기도 했다. 여러 국제기구, 각국 정부 정책 자문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아들로, 장 교수의 동생인 장하석 씨 역시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와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과는 사촌지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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