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파트 층간 소음 참을 수도 싸울 수도 없고…

사회문제로 부상…현명한 대처법은

층간소음은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하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이웃끼리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층간소음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층간소음은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하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이웃끼리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층간소음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직장인 김모(39'대구 수성구 지산동) 씨에게 2011년은 악몽 같은 해였다. 평안했던 김 씨의 생활은 지난해 초 그가 사는 아파트 위층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 오면서 악몽으로 변했다. 새벽 2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들리는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쿵쿵거리는 소리부터 빨래하는 소리까지 위층에서 나는 소음은 다양했다. 심지어 새벽에 파티를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소음으로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지면서 김 씨 가족의 스트레스 지수는 급상승했다. 급기야 성격이 예민한 아내는 신경쇠약 증세를 호소했다. 참다못한 김 씨가 위층에 올라가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파트관리사무소와 부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도 제기했지만 소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김 씨가 항의를 할수록 이에 앙갚음을 하듯 소음은 더 심해졌다. 김 씨는 최후 수단으로 경찰에 신고까지 했지만 이웃 간에 원만히 해결하라는 말만 들었다. 김 씨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집으로 찾아와 아파트 문을 발로 차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금도 아파트 문에는 발로 찬 흔적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 씨의 악몽 같은 생활은 월세 살던 윗집이 이사를 가면서 1년여 만에 막을 내렸지만 김 씨는 아파트 문에 남겨진 발자국을 보면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다.

층간소음은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하는 문제다. 국민의 65%가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층간소음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층간소음으로 이웃 간 다툼이 빈발하고 있으며 층간소음 문제로 시비를 벌이다 불을 지르거나 이웃을 죽이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층간소음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자 정부는 최근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의 대책 발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층간소음 문제를 조명했다.

◆이웃 잘 만나는 것도 복

층간소음을 둘러싼 다툼이 잦아지면서 공동주택 생활자들에게 좋은 이웃을 만나는 일이 하나의 행운처럼 여겨지고 있다. 대구 북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한지수(33'여) 씨의 수면 리듬은 6개월 전 위층에 70대 노부부가 이사를 오면서 깨져 버렸다. 평생을 시골에서 살다 노년에 자식들이 있는 대도시로 이사를 온 노부부가 아파트 생활에 익숙지 않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소음을 내기 때문이다. 한 씨는 "밤에 마치 방아를 찧듯 쿵쿵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시골 생활과 아파트 생활은 엄연히 다른데 어르신들이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층간소음 문제를 겪어 본 사람이라면 조용한 이웃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실감할 것이다"고 말했다.

◆층간소음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들

층간소음이 이웃 간 불화의 원인이 되면서 이에 대처하는 방법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이를 둔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처 방법은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해 집안 곳곳에 충격 흡수용 매트를 깔아 두는 것이다. 아이 키우는 가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또 다른 대처 방법은 이웃을 찾아가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김영신(37'여) 씨는 한 달에 한두 번 음료수나 빵 등을 사서 아랫집에 인사를 간다. 특히 집에서 모임이 있을 때는 미리 찾아가 양해를 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김 씨는 "찾아가 얼굴을 맞대고 사정을 이야기하면 이해를 해 준다. 아파트에서 아이 키우는 것이 죄는 아닌데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끼리 얼굴을 붉히는 것보다 좋아 예방 차원에서 인사를 간다"고 말했다.

아예 층간소음 문제가 없는 곳만 골라 이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3남매를 키우고 있는 배상진(43) 씨는 첫 아이를 낳은 뒤부터 줄곧 아파트 1층으로만 이사를 다녔다. 배 씨는 "아파트 1층의 경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아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어 속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 더구나 고층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대책

환경부는 올해 안으로 층간소음 피해구제를 위한 별도 기준을 마련하는 등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환경부 산하 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이달 14일 층간소음 분쟁의 기준으로 삼는 소음기준을 완화해 작은 층간소음이라도 환경분쟁조정위를 통해 피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을 밝혔다. 현행 규제 기준은 주간의 경우 55㏈A(사람이 느끼는 소음의 정도를 표시하는 단위), 야간은 45㏈A다. 환경부는 소음 측정시간도 줄일 계획이다. 현재는 5분간 측정한 소음이 주간의 경우 평균 55㏈A, 야간은 평균 45㏈A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측정 시간이 너무 길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또 환경부는 이달 15일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개설해 운영에 들어갔다. 한국환경공단에 설치된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피해 구제를 요청하기 전에 층간소음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는 올해 수도권에서 시범 운영된 뒤 내년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정부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정부 발표를 두고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규제 강화 방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음 기준 완화가 층간소음 문제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 최병우 주거권 실현을 위한 대구연합 사무국장은 "규제가 능사가 아니다. 층간소음은 규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음 기준이 완화되면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이웃 간 분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층간소음 분쟁을 다루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유명무실한 역할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층간소음 분쟁이 빈발하고 있지만 올해 대구시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이달 21일 기준) 층간소음 민원은 한 건도 없다. 이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원인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환경분쟁조정위원회 관계자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민원이 접수되면 소음을 측정한 뒤 규제 기준을 넘어설 경우 소음 발생자에게 피해 배상액을 부과한다. 하지만 소음 기준이 워낙 까다로워 지금까지 전국에서 규제 기준을 넘긴 경우는 한 건도 없다. 설사 소음 기준을 초과해 피해 배상액이 부과되더라도 강제력이 없어 지급을 거부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한 후 이웃 간 감정이 더 악화돼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해법은

층간소음은 공동주택이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택 건설 기준을 강화하고 기준 준수 여부를 철저히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행 층간소음 관련 기준에 따르면 공동주택을 지을 때 확보해야 하는 바닥의 콘크리트 두께는 210㎜ 이상이다. 하지만 주택 건설 기준 강화는 자칫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 최병우 사무국장은 "건설 기준을 강화해 공동주택을 지을 때 층간소음을 차단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층간소음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분양가 상승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문제다. 건설업체들이 건설 기준을 준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 감독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공동주택 생활자들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이웃끼리 교류하며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소음 발생을 줄이고 소음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자세가 층간소음 분쟁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보다 입주민대표자회의 등의 자발적인 주민 조직을 통해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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