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1-아버지의 하모니카
바람소리가 났다. 하긴 삼십여 년도 더 됐으니 제대로 소리가 나는 것도 무리이다. 반짝이던 자태도 빛을 바래 여기저기 벗겨져 볼품이 없어졌다. 그러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버지의 하모니카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언지도 모를 열한 살 나이에 아버지를 멀리 떠나보냈다. 언제나 막내인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던 아버지는 음악을 늘 가까이 하셨다. 하모니카뿐만 아니라 기타연주도 수준급이셨다. 동네노래자랑에 나가서 상품으로 탄 기타를 매일 닦으시며 자식을 대하듯 하셨다. 하모니카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을 먹은 후엔 항상 마루에 앉아 하모니카를 불며 낭만을 즐기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쓰러져 병석에 눕기 시작하고 하모니카는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늘 음악소리로 채워지던 집안에는 적막이 감돌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간단했을 늑막염이 당시에는 녹록지가 않았는지 가득 찬 물을 빼낸 후에도 호전되지 않았다. 당시 전업사를 하셨는데 아버지가 누운 뒤 어머니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했다. 장남이었던 오빠는 중학교 삼학년이었고 언니는 초등학교 육학년이었다.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약값으로 가세는 기울어갔고 힘에 부치는 엄마를 대신해 오빠는 새벽에 신문배달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몇 년의 투병생활을 한 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겨우 단칸방을 구해 이사를 했고 전업사를 처분한 엄마는 시장에 나가 장사를 시작하셨다. 여름에는 시원한 냉차를 팔고 겨울에는 군고구마와 찐빵을 팔아 겨우 생계를 꾸려나갔다. 새로 이사 한 단칸방은 창문이 없어 낮에도 밤이었다. 세끼 제대로 먹는 날이 드물어 매일 고픈 배를 학교에서 물로 채워야했다. 그땐 가난한 집이 싫어 엄마에게 모진 말도 서슴지 않았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엄마는 주위의 권유로 화장품 외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또한 만만하지 않았다. 화장품을 외상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빚을 지기 일쑤였다. 저녁에 들어 온 엄마의 얼굴은 늘 피곤에 절어 있었다. 그 때마다 엄마의 손에는 하모니카가 들려있었다. 아마도 엄마를 지탱 해 준 힘의 근원이었을 것이다. 내 나이 마흔 여덟, 그 때 엄마의 손에 들려 있던 하모니카는 지금 내 손에 있다. 힘든 엄마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하모니카는 이제 나의 곁을 지켜주고 있다. 힘들고 외로울 때면 하모니카를 불며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린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입가에 미소까지 번진다. 같은 하늘아래에 있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남겨 둔 하모니카가 있는 한 마음 속 아버지는 영원할 것이다.
김영미(대구 수성구 사월동)
♥수필2-텃밭이 주는 기쁨
작은 텃밭에 양파모종을 심은 지 7개월 만에 드디어 수확을 하였다. 자색양파와 일반양파 한단씩을 심어 놓고 어린애들 돌보듯이 노심초사 키웠는데 캐어보니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 마늘 크기와 같은 양파들이다. 심을 때 튼실한 모종은 그 후로도 생육이 왕성하여 알뿌리가 좀 굵어졌으나 작은 모종들은 척박한 땅과 혹독한 환경에 그대로 자신을 맡겨 7개월 동안 명맥만 유지하다가 오늘을 맞았는데 수확을 한다는 말을 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땅심도 약하고 햇볕도 잘 안 드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나름대로 그 환경에 적응하여 이 정도로 자라준 양파에게 경의를 표 하지 않을 수 없다. 씨알이 작아도 숫자가 많으니 뽑아서 포대에 담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모종을 사서 심은 고추와 가지는 잘 자라고 있는데 텃밭 주변의 큰 나무들로 인하여 햇볕을 많이 못 본 고추는 가늘게 키만 자라고 있고 진딧물까지 보이고 있어 망설이다 진딧물로 힘들어 하는 고추에 진딧물 방제 약을 분무기로 뿌려 주었다. 약을 안 치고 고추를 키워 보려고 한 작정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토마토는 유인 줄로 묶어주고 지난주에 말려 두었던 조선배추 씨앗은 털어서 비닐봉지에 담고 작은 텃밭이라도 손가는 일이 많다. 점심 식사 때 갓 수확한 양파를 한입 베어 무니 신선한 알싸함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수족 냉증이 심한 아내를 위하여 양파를 여남 개 씻어서 4등분한 후 입이 큰 유리병에 넣고 지난해 직접 담근 와인1병을 양파가 잠길 만큼 자작하게 부어 두었다. 3, 4일 상온에 두었다가 양파는 건져내고 양파 즙이 녹아있는 와인을 소주잔에 한두 잔씩 마시면 수족냉증 뿐만 아니라 혈압이나 무릎통증 등에도 좋다 하니 이 또 한 양파의 새로운 변신이 아니겠는가? 사실 이렇게 텃밭을 가꾸는 풋 농사를 짓는 게 오히려 사먹는 거 보다는 돈이 더 들고 키우는 동안 많은 힘이 들지만 생명 있는 것들의 나날이 변해가는 경이로움과 이런 작은 수확의 기쁨을 주는 일 때문에 또 다시 텃밭에 가서 씨앗을 뿌리고 가꾸게 된다.
김성해(대구 수성구 두산동)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
제가 어렸을 때 당신은
항상 시원한 나무그늘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햇빛이 쨍쨍하고
무더운 날이면 저는 잠깐
당신의 그늘에서 쉬며
당신의 잎만 갉아먹었던
애벌레에 불과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청년이 된 지금 당신은
항상 넉넉한 나무 땔감이
되어 주십니다.
하지만
눈바람이 몰아치고
매서운 날이면 저는 잠깐
당신의 불꽃 옆에서 쉬며
도끼날만 가는
나무꾼에 불과합니다.
어머니
제가 어른이 되었을 때 당신은
항상 편안한 그루터기가
되어 주시겠죠.
하지만
다리가 아파오고
걷기가 힘들 때면 저는 잠깐
당신의 머리위에서 쉬며
작품을 구상하는
목공예가가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당신은 저의 인생에 있어서
한그루 믿음직한
커다란 나무이십니다.
하지만 어머니
저는 당신의 인생에 있어서
당신을 밝게 비추는
태양이고 싶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조상현(대구 달서구 상인1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조영준(대구 수성구 범어동)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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