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이(4'여'뇌병변 장애 1급)는 울보다. 2009년 엄마 고향인 베트남에 갈 때도 비행기 안에서 5시간을 울어대 사람들이 "목청이 좋아 가수해도 되겠다"며 농담을 했다.
다섯 달째 입원 중인 어린이 병실에서도 지영이의 울음은 멈추지 않는다. 병원 생활은 지영이에게 고통이다. 하루에 수 차례씩 목에 관을 넣어 가래를 빼내야 하는데 네 살난 아이가 견디기 힘든 고문이다. 지영이는 얼마 전 발작을 하면서 문제가 생겨 코로 숨을 쉴 수 없다. 엄마 잉 티 노(27) 씨는 "내 소원은 지영이가 목에 관을 빼고 스스로 숨쉬는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아픈 딸, 아픈 부모의 마음
지난달 30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어린이 병실. 침대에 누운 지영이가 눈을 감고 힘들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엄마 잉 씨가 가래를 빼기 위해 지영이 목에 손을 가져가자 갑자기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지영이는 하루에도 여러 번 이겨내고 있다.
2007년 9월, 지영이는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땐 체중 3.3㎏의 건강한 아기였다. 하지만 문제는 3일 뒤 생겼다. 잉 씨가 젖을 물리고 있는데 지영이가 갑자기 경기를 했다. 병원에서는 "아기가 아픈 것 같다"며 지영이를 데려갔고 난치성 간질 진단을 받았다.
병 때문인지 지영이의 성장 속도는 느렸다. 100일이 넘어도 혼자 뒤집지 못했고 돌이 지났는데 걸음은커녕 바닥을 기지도 못했다. 그래도 아빠 최태민(51'가명) 씨는 기다렸다.
하지만 태어난 지 16개월이 다 됐는데도 지영이는 걷지 못했고 다시 병원에 찾아갔다. 그때 지영이는 '활동성 구루병' 진단과 함께 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구루병이란 비타민D 결핍증으로 머리와 가슴, 팔다리 뼈의 변형과 성장 장애를 일으키는 병으로 희귀 난치성질환이다.
모든 부모들이 아이가 말문이 트여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지영이는 말을 아예 하지 못한다. 눈빛과 웃음, 표정으로 부모와 소통할 뿐이다.
최 씨는 "우리 지영이는 웃는 모습이 참 예쁜데 얼마 전 병원에 입원한 뒤로 도통 웃지를 않는다. 그만큼 병원 생활이 딸을 지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눈물을 삼켰다.
◆날마다 깊어지는 시름
올해 3월 지영이가 폐렴에 걸리면서 발작도 심해졌다. 1년 넘게 장애아동 어린이집에 다닐 만큼 몸이 건강해졌는데 갑자기 건강이 악화된 것이다. 기침이 심해지더니 열이 38℃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지영이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아픈 딸 때문에 지영이 부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아빠 최 씨는 "그때 지영이 심장이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했다. 그 뒤로 아이가 숨을 쉬기 힘들어 하더니 지금은 목에 관을 꽂아 겨우 숨을 쉬고 있다"고 말했다.
지영이가 병원에 입원한 뒤로 엄마 잉 씨는 집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세수는커녕 볼일도 제 때 못 본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항상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 보호자한테 '지영이를 봐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자리를 비운다. 혼자 밥 해먹고 집안일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영이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아이가 병원 신세를 지는 날이 길어질수록 부모의 시름도 깊어졌다. 최 씨는 8년 전부터 달서구 감삼동에서 작은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30만원을 주고 자리를 빌리고 있는데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보증금에서 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23㎡(7평 남짓) 규모의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세 식구의 생계를 책임졌지만 요즘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최 씨는 "장사하는 사람들은 항상 손님들을 받을 수 있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수시로 자리를 비우다 보니 단골이 다 떨어져 나갔다. 요즘에는 하도 장사가 안 돼 가게를 아예 접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혼자 숨쉴 수 있다면"
최 씨는 요즘 항상 잠을 설친다. 언제 문을 닫을 지 알 수 없는 가게, 딸의 병원비와 생활비 등 그의 머리 속은 고민으로 겹겹이 쌓여있다. 다행히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지영이 의료비 혜택은 조금 보고 있지만 최 씨의 근로 소득이 신고돼 있어 생계비 지원은 단 한푼도 받지 못한다. 엄마 잉 씨는 지영이 곁을 24시간 지켜야 해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처지다.
문제는 생활비와 앞으로 발생할 병원비다. 현재 지영이는 폐렴 후유증으로 기관지 내강이 좁아지는 '기관지 협착증'이 생겼다. 이를 치료하려면 협착 부위를 성형하는 기관지 성형수술을 해야 하는데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생활비를 대기도 빠듯한 처지에 수술비와 서울에서 소요될 비용을 생각하니 최 씨의 가슴은 더 무거워진다.
최 씨 부부의 꿈은 소박하다. 지영이가 벌떡 일어나 걷는 것도, '엄마, 아빠'라고 불러주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예전처럼 목에 관없이 숨을 쉬고, 입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최 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 속 지영이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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