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친박계 핵심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가 여권에서 대세론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난 총선 때부터 돈 많은 인간들(그는 '파리'라고 표현)이 꼬여 걱정된다. 지금 새누리당으로선 '돈' 문제만큼 민감한 사안이 없다. 뭐라도 터지면 크게 출렁일 것이다." 우려가 현실이 될지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공천헌금' '매관매직' 의혹 사건은 진실 여부를 떠나 일단 새누리당 이미지를 크게 훼손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경선이 한창인 가운데 박 후보로서는 답답한 마음뿐일 것 같다. 대권 주자지만 맡은 당직이 없어 이렇다 할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나 대처도 '눈에 띄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씻고 천막당사로 당을 구출해냈던 박 후보가 이번 공천헌금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에는 귀추가 주목된다. 난파선 선장으로서의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그간 대표 시절이나 비대위원장 재직 때 발생했던 '돈 문제'는 일이 커지기 전에 모두 선을 긋거나 거리를 뒀다. 옛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서 주요 선거를 앞두고 돈 문제가 발생하면 검찰 수사를 즉각적으로 요청하면서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대기업의 정치후원금을 자동차 트렁크에 받아 '차떼기당'으로 불렸을 때다. 2004년 3월 23일 한나라당 임시전당대회장에서 그는 당대표로 뽑힌 뒤 "내일부터 옛 당사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간밤에 쳐놓았다는 천막당사에서 당무를 봤다. 시끄럽고 먼지 많고 누추한 곳이었다.
2006년 5'31 지방선거를 40여 일 앞두고 서울의 단체장 공천 희망자들이 당시 한나라당 중진인 김덕룡'박성범 의원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가 불거졌다. 당시 대표였던 박 후보는 두 사람을 검찰에 고발토록 하는 초강수를 뒀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까지 바꿔가며 쇄신해야 했던 것도 4'11 총선 석 달 전인 1월 초,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이 2008년 전당대회 때 돈봉투를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떠밀려서 비상대책위를 꾸렸고 위원장이 됐다. 그리고는 이 사안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신속한 판단으로 박 의장과 거리를 뒀고 당의 상처를 최소화했다. 박 의장에게 사실상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박 의장은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의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새누리당, 특히 박 후보가 이렇게 '돈' 문제에서만큼 뜨뜻미지근하지 않고 즉각적인 것은 그가 요즘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읽힌다. 대기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촉구하면서 정작 당은 공천을 대가로 뒷돈을 받았다면 너무 큰 이율배반으로 국민적 지탄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 후보는 동생 지만 씨가 저축은행 구명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일었을 때 "동생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걸로 끝난 것 아니냐"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가족을 두둔했는데 이 발언이 두고두고 지적받고 있기도 하다. 정수장학회, 영남대재단 등의 문제도 알고 보면 모두 돈 문제인 것이다.
무엇보다 박 후보가 비대위원장으로 있을 때 당의 쇄신과 공천 개혁을 가장 강하게 주문했다. '검은돈 공천'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의 대권 가도에는 치명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당시 당의 책임자였고, '박심'(朴心)을 빙자해 사적 이득을 취하는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은 공천 국면 내내 정치권에 회자했다.
특히 정치대담집 출간과 예능 프로그램 출연 뒤 지지세를 회복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부터 '구태의연한 정당정치'를 지적하고 있다. 공천 대가로 뒷돈을 주고받는 정치권의 구태가 사실이라면 많은 유권자가 새누리당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커진다. 공천헌금을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는 현영희 의원에 대해 자칫 8월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넘어오면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숱하게 언론에 '뒷돈거래'가 노출될 것이다. 공천헌금 사태에서 비켜간 야권의 총공세도 예고되고 있다.
박 후보 캠프에서도 비상이다. 박 후보가 직접 나서 불을 꺼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공천헌금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사당화' 때문이라는 비판을 비켜가기 어렵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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